아찌꼭다리

by 김봄빛

다리가 불편한 나는 늘 ‘아찌꼭다리’였다. 몸을 부딪치며 노는 아이들 틈에선 항상 그랬다. ‘아찌꼭다리’란 말은 우리 동네 아이들이 ‘깍두기’ 대신 쓰던 말이었다.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눠 놀이를 할 때 어느 편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은 채 덤으로 노는 아이를 깍두기라 했다. 깍두기는 요리를 한 후 남은 어중간한 형태의 무를 깍둑깍둑 대충 작게 썬 뒤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을 버무려 담근 무 김치를 이르는 말로, 완전하지 않고 어중간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좀 모자라는 아이나,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언니, 오빠들이 그들의 동생들을 놀이에 같이 끼워 놀면서 생겨난 아이들의 놀이문화 속 ‘은어’라고 하면 맞겠다.

‘아찌’는 경상도에서 ‘아저씨’를 이르는 아이들 말이었다. ‘꼭다리’는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등지에서도 ‘꼭지’나 ‘우수리’를 이르는 말이다. 전라도에선 ‘꼬다리’라고도 한단다. ‘미역 꼬다리’가 ‘미역 귀’를 이르듯이.

그 당시 내 주위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아이는 없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내 자신이 곧 ‘아찌꼭다리’였다.


깍두기는 놀이 규칙은 따르지만 승패 규칙은 따르지 않는다. 숨바꼭질의 경우, 술래에게 들키지 않게 숨어야하는 놀이의 규칙은 똑같이 적용되지만 술래에게 잡혀도 깍두기는 다음 술래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나를 깍두기로 처음 끼워 넣을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나 오빠뻘의 누구였을 거다. 좀 못났다고, 모자란다고 내치지 않고 깍두기란 이름으로 신명난 놀이판에 끼워 같이 놀았다는 게, ‘휴머니즘’적인 아름다운 발상이며 아이들의 기특한 마음 씀씀이 아닌가! 약자를 배려하고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으리라.

만약에 깍두기란 개념이 없었다면, 혹은 있었어도 우리 동네 아이들이 그 개념을 거부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무엇보다도 소외감을 많이 느꼈지 않겠는가. 나아가 내가 남들과 몸이 같지 않다는 자각은 또 얼마나 큰 아픔으로 다가왔을까?

어렸을 때는 동네 아이들이 나를 끼워 같이 놀아 준 게 고마운 일인지도 몰랐다. 나이가 든 뒤 어른이 되어 뒤돌아보니 그들의 배려심이 사무치게 고맙다. 어린 나이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더라면 그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지우기가 힘들었을 게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장애가 있는데도 어찌 그리 밝을 수 있느냐’고 칭찬한다. 내 밝음의 저변에는 어렸을 적 나를 끼워 놀아주던 우리 동네 아이들의 배려가 단단히 깔려 있다.


며칠 전이었다. “3004동 2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 스피커에서 꽤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에서 일어난 불은 아니었지만 늘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선 근 30 년을 단독주택에 살았으나,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늘 불안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배려하고 배려 받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19층이다. 모두가 급한 상황에서 승강기를 탈 수 없을 때 내가 19 층을 걸어서 내려갈 수 있을까? 못한다. 빨리 뛰어 내려가는 사람들 중에 과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도와주기는커녕 나를 밀치고 가지나 않을까?

가족이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갈 테지만 나 혼자 있을 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나는 어쩌나? 비단 아파트뿐만 아니라 어디에서건 나의 불안은 계속 된다. 건강한 사람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 걱정을 나는 늘 안고 산다.

컴퓨터에 오래 쌓인 먼지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금방 진압했단다. 하지만 과민해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나는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몸이 불편해서 혼자서 계단을 내려갈 수 없는데 오늘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제가 도움 받을 방법이 있나요?”

“네.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하시면 저희가 모시러 갑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과연 그럴까? 비상사태 매뉴얼이 그렇다는 거겠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매뉴얼이 없어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러나 그 말을 믿어야 한다. 믿고 싶다. 아니면 늘 불안에 싸여 쩔쩔 매든가.

장애를 가진 사람은 평소에도 약자이지만 비상상황에서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바람 앞의 등불이다. 평소에는 기가 펄펄 살아있다가도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매번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어릴 때 ‘아찌꼭다리’라는 이름으로 나를 끼워서 같이 놀아주던 그때처럼, 비상시에도 날 도와줄 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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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