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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Feb 13. 2022

전철에서 만난 홍길동 2

서산을 넘어가는 전철은 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

턱 주름이 가느다란 사내 소리만이 세상을 깨트리는 듯. 

콧수염을 기다랗게 기를 양, 가지런하다. 

근근히 넘어가는 중년 터울. 

도드라진 피부가 거무티티하다.      


아, 내 얼굴을 보지 마라. 

왜 나만 보고 얼굴 웃음 지어보라고 하는가?

그러지 마라, 제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시간을 제발 흔들어 놓지 말아다오.     


후후 나는 언제나 나를 쳐다보는 사람을 위해 

나를 볼 때마다 사라지는 연습을 해 왔지.

다시 이렇게 훌쩍 사라지는 일, 

어찌 일어나는지 잘 보아두시라.      


자, 내 남은 즐거움을 가뿐히 거두리니,

잘 보아라.

똑 같은 기쁨이란 존재 않는 법.

그대 눈망울이 언제나 똑같지 않는 것처럼,

그래, 내 묵묵함도 그대로 있지 않는 법.     


아직 나를 보고 있느냐.

그러나 이제 하늘가를 보아라.

너나 나나 밥 먹을 그곳으로 가야 하는 지금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느냐!

한 번은 내 세상이었던 곳,

천천히 사라지는 내 그림자를 보아라.     


어디 갔을까?

전철보다 먼저 서산으로 사라진 사내는.

거기가 어디냐고 손짓해 물었었다.

대답은 없다.

아, 벌써 사내 눈빛보다 붉게 물든 내 그림자여!

그랬다, 대답은 결국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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