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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Jan 28. 2022

고양이와 금붕어와 나, 세상 한 판 멋지게 놀기

내게도 참 많은 낮과 밤이 있었다. 낮에 해, 밤에 별, 해와 별 사이에 달, 이 구분은 이러한 단어들은 자연 현상을 나타낸 것의 하나일 뿐이다. 물이든 불이든, 사람이든 또 내가 지금 기르고 있는 고양이든 금붕어든 마찬가지. 물론 돈도 컴퓨터도, 또 블록체인도 지구에 있는 자연물의 하나일 뿐. 당연히 나도 그러하다. 이즘이면, 여기에 생명이 있느냐 아니냐 하는 구분은 참 쓸데없는 일일 것. 이렇게 나의 밤은 새벽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 새벽이 끝날 즈음, 나는 세상이거나 자연이 정해놓은 잠속을 잠깐 들어갈 것이다. 유유상종. 지구가 생겨나고, 생명이 생겨날 때부터, 어쩌면 내 것과 아닌 것이 서로 만들어졌나 보다. 그 생명의 하나가 내가 되었고, 그 나는 어느 힘에 속해졌고, 그래서 지금 움직이고 있다. 내 숨 맛을 보며, 슬쩍 웃고 있는 것이었다. 몇 개 나를 위한 생각과 이 문장을 나열하면서, 힘과 돈과 블록체인 무게를 재면서 말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바, 그대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만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마다, 그때마다 무엇인가 만들어진다는 말도 또 있다. 그런데 내겐 누가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이 두 가지 우스꽝스러움이 그 힘을 잃는다. 허, 그것 참! 무엇이 즐거움인지 아닌지, 아무리 얼굴을 매만져 쓰다듬어도 내가 누구에 의해 어떤 느낌이 생기다니, 허, 그것 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말도 참 잘 만들어졌다. 설상가상, ‘법 앞에서는,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도 참으로 멋지다. 그러하니, ‘누구나 태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위대하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7년 되었고, 금붕어는 3달 되었고, 우리 가족은 16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이 말은 나에게 더욱 위대하다. 보이는, 들리는, 느껴지는 것들이 참으로 평등하게 보이는 참 이른 새벽이다.     


살아온 나날을 가까이 돌아보면, 지구에서 한반도에서, 천안과 서울 아현동과 문래동 또 그 몇 곳에서, 잠자고 먹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걸어 다니고, 뭐 그렇게 실타래처럼 데이터베이스 주소 나열처럼, 시간들이 오고가고 했던 것 같다. 최근 먹고 사는 일이란 내 힘이 얼마나 있는지 느껴보려 했던 애씀인 듯. 이 느낌에 내 맘도 몸도 나와 상관없이 조금씩 흔들거리거나 빙빙 도는 느낌으로 남아, 내 새벽의 끝을 향하고 있다.     


한때, 세상은 평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 참 어렸을 때였으리라. 참으로 세상모르고 살았던 때. 평평한 세상에서 보이는 것마다 참으로 신기했던 적이었으리라. 그 평평한 세상이, 진정 세상은 평등하다고 믿고 싶기에, 언제나 손톱 때처럼 보고 또 보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그랬을까? 가끔, 금붕어도? 그들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기에? 내가 그들을 기르며, 나도 자연물이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끼려고?     


어쩌면, 고양이처럼 금붕어처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보다 먼저 태어났고, 내가 모르는 힘을 그들은 가졌고, 그 힘은 불멸의 에너지가 되어,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되어, 그들의 손톱 때로 여기며, 내 움직거림을, 이러한 움직거림들을 바라보며, 먼 저 하늘 멋진 곳에서, 웃음이란 말밖에 없는 곳에서, 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이나 나나 고양이나 금붕어나 이 지구는 이 우주는 이 새벽은 뭐 다르지 않다고, 이 새벽이 나에게 외치고 있지만 말이다.     


2년 넘게 블록체인이란 단어를 끼고 살았다. 이 단어들을 나열해 놓고, 내 시간과 내 힘을 얹혀 놓고, 움직이는 것을 보며 지냈다. 생각보다 시간과 힘이 펄떡이는 것을 보았다. 물을 갈아주면, 다시 보기 좋은 금붕어로 보이는 것처럼, 사료와 물을 달라고 방바닥에 뒹구는 고양이, 그 고양이를 안아 보는 것처럼, 블록체인의 한 블록에 존재하는 나도, 다음 블록에도 내가 다시 등장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엇인가 새로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처음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구 위에 태양이, 태양 위에 또 무엇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1% 사람이 99%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을 믿을까? 내가 불과 20년 정도 더 숨을 몇 번 쉴 수 있을까 하는 말을 하는 것처럼, 0.06% 지갑이 62%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까? 아니, 그냥 편하게, 수만 명이 세계 돈의 99%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그냥 믿을까? 세상은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이라고, 그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믿을까?     


사람이 만든 기록의 힘이 법을 만들었고, 그 법을 손에 쥔 사람이 돈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보다. 그들이 먼저 돈을 가졌고, 돈을 먼저 가진 그 사람들에 의해 첨단 문명이 만들어졌다고 말해야 할까 보다. 돈이 돈을 낳았고, 신용이란 말을 만들었고, 컴퓨터도 컴퓨터통신도 만들었고, 그렇게 신용카드란 말이 만들어졌으니, 돈이 돈 쓰는 사람을 만들었고, 그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보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라며 다짐해야 한다. 그래, 이것만이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진리라 믿게 한다.   

  

내가 먹은 밥이나 물이 몇 그릇 몇 잔이 될까? 세었다면? 정확할 거다. 그래서 힘을 유지했고, 그 힘으로 일을 했을 것이고, 또, 몇 시간 일했다는 것을 셌다면? 그래, 정확하다. 이러한 나 같은 사람을 세었다면, 물론 더 정확할 것. 몇 겁을 거치면서, 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사용할 돈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요즈음, 누구나 맞다 할 것이다. 일하는 만큼 돈이 노동의 대가로 주어졌고,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무한대로 돈이 늘어나는 것. 지당한 말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돈을 먼저 가진 사람들은 이제 사람의 노동을 로봇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노동보다 로봇의 노동을 선택했다. 어쩌면, 무척이나 인간적인 선택이다. 물론, 로봇이 사람을 안전하게 떠받들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선택한 것. 참 멋지다. 사람이 이제 일을 점점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부 사람만이 일하는 로봇을 만들고, 대부분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말인즉, 로봇이 일해서 대부분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다.     


로봇이 사람 대신 일해서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줄지, 아니면, 똑같이 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마도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렇다면 먼저 돈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준다고 보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돈 주는 그들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다. 고양이도 금붕어도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모르는, 참으로 헷갈리는 새벽녘이다.     


돈을 나누어주다가, 그들은 어쩌면, 돈을 나눌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동안 무한대로 찍어냈던 종이 화폐를, 신용카드로 사용하던 화폐를, 이젠 블록체인이란 이름의 새로운 화폐를 만들고 싶은 것. 그거니까 대다수 사람이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그래서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암호화폐의 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세계 단일 화폐’를 만들려는 것.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닐 시점에, 그들만의 암호화폐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나누어 주려는 것. 우습지만, 일어나서는 안 되는 나만의 희한한 생각도 해 본다.   

  

그들이, 나누어줄 돈을 세다가, 너무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자연발생적인 아니 치명적인 전염병이 만들어지길 기다렸다가, 아니 그 시기를 맞추어, 자연스럽게 사람 수를 줄이는 것, 이도 맞을까? 무척이나, 수백년 연구된 연구 결과를 실행시키는 것 같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을 어쩌랴. 그래, 그러나 이제 이런 상상은 그만 멈추어야 한다. 이 쓸데없을 것 같은 생각을 이 새벽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 끝내야 할까? 허, 참 별 걱정을 다해 본다. 웃지도 않고 말이다.     


이럴 때 한 번은, 돈이 에너지가 되고, 노동이 된다는 것을 사실이라 믿어야 하리라. 한때, 노동의 대가는 신성한 것이라고 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었다. 블록체인 이론이 숭고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승계한 것이라며 떠들고 다녔다. 똑같이 생산하고 똑같이 나누어 갖자는 아름다운 말을 실천할 수 있을 거라며 컴퓨터에다 대고 쓰고 또 써보았었다. 그런데 고양이도 금붕어도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도 내 할 일을 할 뿐? 그런데 블록체인 단어를 먼저 사용한 덕분에 먹거리 걱정을 조금 덜었지만, 무엇이 아쉬운지, 아쉬운 게 뭐 그리 많은지, 새벽이 끝나기 전에 하나의 의미를 더 갖고 싶어 하다니, 머리가 잠깐 띵하다.    

 

그래도, 사람은 참으로 위대하다. 살아있는 모두는 참으로 아름답다. 블록체인 이론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도 자연의 약육강식의 법칙도 모두 멋지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래서 나도 멋지다니, 이 어찌 영광이 아닐 것이냐! 나는 이제 점점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이 줄어드니, 할 일이란 뭐 노는 것밖에 없을 것.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아름답게 놀아야 할 것인가? 참으로 더 어렵지만, 새로운 놀 일을 찾아야 하다니,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다.     


고양이 재롱을 보면서, 어항 속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보면서 살기에는 참으로 너무 심심할 것 같다. 나는 이 새벽이 끝나 세상이 훤해지기 전에 무엇을 하며 놀까 고민을 해야 한다. 우선 창을 먼저 닫아야 할까? 날이 밝은 것을 보면,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직 낮에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아직 펄펄 넘치는 인간 습성 때문이리라. 아니, 무엇인가 모두 보이는 곳에선, 내가 노는 것을 모두 볼 것 같아서다. 나도 저들이 노는 것을 볼 것 같아서다. 노는 것이 서로 비슷할 것 같아서다. 왜? 비슷하면 재미가 떨어지니까.    

 

다시 유유상종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서로 노는 일. 뭐 고만고만할 것이다. 낮과 밤에 노는 것이나, 바다며 강가에서 사는 것이나, 북극이며 남극이거나 적도지역이거나, 비슷할 거라는 거다. 고양이나 금붕어나 나나, 서로 섞여 사는 것도 뭐 다를까. 세상이 평등하다고 우기며, 지구가 아무리 크다손 멀리서 보면 금붕어보다 작게 보일 것. 그래, 그래도 존재하는 것은 모두 비슷할 것이어늘, 기왕에 생겨났으니, 세상 한번 멋지게 놀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첨단 문명 이후에는, 이미 존재했었던 사람들과 또 태어날 사람들, 그 모두 멋지게 노는 일만이 중요할 것. 그들의 무한대 상상처럼 나도, 어떠한 것들도 그 모두 한 번은 기록되었던 것처럼 나도, 멋지게 기록되어야 할 것이니, 지금 나열하는 것도 매듭지어져야 한다. 모든 것은 매듭지어진 기록들의 연속이었으니, 그래 이 기록은 여기까지다. 이제 한 줄 기록이니, 한 개 블록이니, 암호 맞추기니 하는 블록체인도, 무슨 법칙이 어쩌니 하는 말도 식상하다. 나의 경우, 나를 살게 하는 힘은 결국 내 욕심에서 생겨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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