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개의 점에 불과하다
동서고금 대부분 느끼는 것이지만,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그냥 점이다. 물이든, 구름이든, 들판이든 점이다. 컴퓨터나 통신망이며 핸드폰, 또 아파트든 초가집이든, 그래 그런 점, 점, 점이다. 그렇듯, 무한대 점들이 또한 점처럼 모여 또 점으로 움직인다. 물론 나도, 영광스럽게 그냥 한 개의 점으로 움직이고. 엉뚱하게도 자연 또한 하나의 점이라 말하며, 참 건방지게도 점으로 나도 자연의 하나라며 움직인다. 지금도 이렇게 움직인다. 그랬다, 이조차 거의 잊으며, 점이 아닌 것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가끔 나는 잘 움직거리는 점이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아니, 서로서로 잘 살아 있어야 한다고 먼저 손들어 우긴다. 아무리 점이라도, 그저 하나의 점이라도, 서로 크기가 다르다며, 색깔도 모양도 다르다며, 무게도 다르다며, 내는 소리도 다르다며, 그렇기에 서로 우긴다. 그래, 내가 더 크고 멋있다고, 또 단단하다고 우긴다. 역시 나도 마찬가지다. 어떨 땐, 잘 보이지도 않는 내 점을 멋쩍게도 물끄러미 보며 말이다.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느 누구로부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라고도 보여진다. 그러하니, 모두 존재했던 인간, 아니 생명체 모두 마찬가지일 것. 그런데 절대 이러한 세상은 없다. 움직이고 있는 동안 절반은 맞다 틀리다며 내가 누구에게 소리를 하고, 절반은 그 소리를 누구로부터 듣고 살아있는 것이다. 아니, 아니, 내가 내는 소리든 그래서 내가 듣는 소리든, 매우 자주 잊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이래야 참으로 공평한 것! 이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문제는 한마디 더 하고 싶을 때 생긴다. 마지막 소리는 내가 해야 하니 말이다. 나를 위한 자유란, 결국 나 자신이 나를 또 구속하는 것일 텐데도 말이다. 그래도 나를 위해, 그것도 잘 움직이기 위해, 참 재미있게도, 내 자유를 내가 속박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속박당하고 있다고 계속 우기는 일이라니! 이는 당연히 나, 한 개의 점만의 생각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도, 어느 순간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문제는 내가 내고 내가 푼다
어쩌면 잘 움직이기 위해, 잘 살아 있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이 많은 문제들! 역사가 그 문제의 되풀이 결과였겠지만, 내 문제는 나 한 개의 점에서 수없이 만들어지리란 생각이다. 그 문제들을 스스로 풀다가, 한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하고, 그 문제와 함께 한 개의 점으로 사라진다는 거다. 다른 이들과의 문제와 얽히고설키니 그러할 수밖에. 아니 내 문제에 눌려 스스로쓰러지는 것은 아닐지.
서로서로 그 많은 점들, 그 점들의 문제들이 부딪히며 생기는 또 다른 문제들. 그랬다. 그렇게 문제들이 많으니, 푸는 것도 모두다 다르다. 그 와중, 풀어지지 않은 문제가 또 그렇게 많을 수밖에. 저마다 만든 문제와 푼 문제가 다르니, 내가 푼 문제만이 나를 만족시키니, 이 세상은, 아니 저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 무작정 틀린 말은 아닐 듯도 싶다.
그렇다면 인간은 저마다 잘났다고 뽐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이것이 세상 공평한 이유 아닐까? 뽐내는 시기나 장소 그리고 그 크기는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 분명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이 탄생하면서 우리는 서로 비교해가며, 서로 평등해지려 욕심을 부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내 생각이 행동이 더 맞다며 우기는 것을 어찌 뭐라 할 수 있을까 말이다.
나와 같은 저들을 나와 비교하지 않으면, 편안할까? 비교하지도 또 당하지도 않는다면 편안할까?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문제든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낸 문제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문제를 내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가 물리고 무는 일, 바로 이것이 내겐 내 삶이란 상상이다. 풀릴 때마다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만, 풀리는 순간의 행복감이 바로 ‘내가 나’임을 느끼게도 하니, 이 얼마나 멋진 상상의 내 영광인가.
어쩌면, 더 멋진 영광은 ‘나보다 저들이 멋지다’고 내가 당당하게 볼 수 있을 때일 듯도 하다. 다른 이들의 나쁜 점보다 좋은 점만 보고, 그 좋은 것을 내 것보다 좋다고 인정할 때. 그럴 때마다 나를 분명하게 느끼게 되니,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그래서 더 느낄 것이 있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저들을 먼저 좋다고 말해주는 일, 그래, 이게 진정 서로 대등해지는, 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그래서 나를 향하는 길일 것 같다. 하,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누구나 서로에게 평등하고 싶다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내 존재를 만끽하기 위해,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만의 장점,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우위 수준을 나만의 방법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것. 물론 내 생존의 의미요, 내가 보존하고 있는 행복감이다. 그 행복감을 나이로 나타낸다면? 신체의 나이, 지혜의 나이, 지식의 나이, 재산의 나이 등등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서로의 높은 나이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 결국 행복의 나이는 서로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생명체는 존중받아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 평등이 영원한 숙제라니,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서로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한, 그래도 생명체로서의 즐거움은, 그 시간은 언제든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자유를 느끼기 위해 서로 공존해야 하리라’라는 진리 같은 말은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서로 존중하는 일이 서로 동등해지리라. 몇 번 다짐한 말이지만, 서로 존중하는 일은 상대를 인정하는 일이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상대를 먼저 인정하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내 희생이 먼저 따른다. 즉, 내 일부를 먼저 보이는 일이다. 먼저 내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저러하니 나와 함께 이러저러하지 않겠느냐는 의사 표현이다.
이러한 의사 표현이란 사람이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 차이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일이 어쩌면 우리네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달라진 것을 사실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 달라진 것을 확인하기 위해 무한대에 가까운 반복을 한다.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하기에, 반복하며 확인하고, 잊을 만하면 또 확인하고, 그렇게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고유성을 만들어 간다. 바뀌지 않을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의 연속으로 나 자신이어떻게 변해 있음을 문득 느끼곤 한다. 참으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문제는 그 반복을 줄이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론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블록체인 이론도 그 무한대급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쓸데없는 반복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일에 새로운 방법이 생길 것 같은 기대다. 물론, 본능에 따른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본능이 자연스러우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그 순간, 본능은 욕망으로 바뀐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다가 욕망의 경계를 넘지 않는 자신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자연에 순응한 자신 모습을 보는 것인데, 이때마다 숙연해지면서, 문득 새로운 멋진 웃음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행동을 모두 기록해두고, 모두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느끼고 움직인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그 행복은 얼마나 위대할 것인가.
블록체인은 상호존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무한대에 가까운 자신의 기억을 근거로 쓸데없는 반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블록체인 이론이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아마도 인간 DNA가 바뀌리라는 말을 뉘라서 절레절레 고개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블록체인플랫폼 한 귀퉁이에 내가 한 행위 모두를 기록하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면 그렇다. 참으로 나부터 먼저 보이며, ‘우리 함께 도우며 살아가자’라는 순수한 명제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는 쓸데없이 반복하는 내 행동을 순식간에 즉시 멈추게 할 것도 같다. 이즈음이면, 나를 위한 인공지능 아바타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내 행동 지침을 매번 제시해 주리라.
만일, 블록체인플랫폼에 내 아바타가 자라게 된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쩌면 우리는 ‘어떤 행동이 다른 누구를 즐겁게 하느냐?’ 하는 고민을 하는 일이, 이 공부를 하는 일이, 우리네 사는 이란 생각도 든다. 이러한 세상이 과연 올까?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오지 않을 세상을 기다리며, 오도록 노력하는 일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시간을 들여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잠깐 블록체인 이론이 나를 바꾸는, 나부터 노력하라는,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상대를 먼저 인정하려면, 상대의 장점을 먼저 보아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그가 더 잘한다면, 그 잘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근거를 가지고 언급해야 한다.
문제는 생명체 모두가 가진 좋은 점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언급해야 하는 것. 그것도 무게, 크기, 길이, 속도, 색깔, 소리 등 모두 다르기에 어떻게 상호 비교에 따른 정형화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느냐는 무척 어려운 문제다. 누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가진 생존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떠한 가치를 숫자로 나타내야 한다. 그 숫자의 으뜸 수단이 성적이다. 1등에게 금메달을 준다. 금은 현재 나와 있는 가장 범용 물물가치교환으로서 최고의 기준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가치가 높다. 공개경쟁에 따른 결과에 따라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금메달을 주는 것은 지금은 진리처럼 느껴진다.
공개적인 성적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장과 상품을 주는 것은 개인에게 무척 큰 부담을 안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다시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그 자리에 오를 때 드는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평생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안이 있다면? 그 누군가로부터 실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방안이 있다면? 또 그 평가 내용을 언제든 볼 수 있다면? 평가의 근거 또한 공개되어 있다면? 공개된 것들이 영구 보존될 수 있다면?
이러한 답의 결과는, 지금까지는 인간 저마다의 기록들이 모여져 법이 만들어지듯, 앞으로는 컴퓨터 발달이 그때마다 보존해 줄 것이라는 상상이다. 물론 어쩌면, 몇십 년이 백년처럼, 다가오는 시간이 지금보다 더 빨리 스쳐 지나가면서 만들어질 것 같다. 이즈음이면, 생명체의 효율적인 생존 방법이 지금보다 다양하게 펼쳐질 것 같다. 이 상상 또한 더는 금물일 것, 상상 꼬리가 제 목을 감아대니까, 그래서 당장은 숨이 턱 막히니까. 그러나 결국 서로 상생하면서 진화할 것은 분명하다. 개인 모두 터득한 실력이나 경험의 척도를 그 근거와 함께 수치화되어, 생존하는 한, 서로 볼 수 있는 방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또 다른 내일은 분명 다른 세상일 것.
블록체인 기대 사례, 실력평가플랫폼과 실력토큰
여기 블록체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력평가플랫폼의 토큰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기존에 나온 플랫폼이나 토큰을 사용한다면, 이 플랫폼을 조율하고 토큰을 추가 발행할 수도 있다. 먼저, 실력평가토큰발행재단(이하 재단)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순서를 바꿀 수 있으나, 다음과 같은 요식행위가 있어야 할 듯. ①재단 준비모임을 구성해 재단 구성에 대한 세부 내용을 설계함. ②재단 참여자들을 섭외해 기금을 마련함. 물론 국내외 대기업 중심이다. ③준비모임은 신입사원공채재단을 구성하고, 재단 이름으로 제반 시행 방안에 대해 결의함. ④사원공채플랫폼을 설계하면서, 회사의 발행 토큰량과 생성/운영 내용 등의 백서를 함께 공개. ⑤재단 측 자체 예산으로 실력평가토큰을 참여자에게 제공함. 이때, 광고를 유치해 실력평가토큰을 제공할 수 있다. ⑥공채 시행은 참여 기업 중심으로 평소 연중무휴로 진행함. 1, 3, 5, 10, 20년 단위의 기간을 설정할 수도 있다.
플랫폼이 준비되는 시점에서 홍보를 통해 플랫폼 참여자 등록을 받아야 할 것. ①원하는 곳에 취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참여자로서 자신의 기본 사항을 등록하고 소정의 기본적인 실력평가토큰을 받음. ②재단은 실력평가토큰을 주는 대신, 응시에 따른 빅데이터 활용 동의서를 받고 이를 이용해 회사는 참여자들의 제반 정보를 추출해 가치를 창출. ③참여자는 실력을 상호 검증하는데 필요한 개인 SNS, 즉 각자 가지고 있는 이메일, 메신저,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카페, 트위터 등을 공개한다. 참여하려는 자의 의지만 가지고도 어쩌면, 그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 보여진다.
플랫폼이 완성되면, 다음과 같은 형태의 상호 실력 평가가 시행되리라 기대해 본다. ①참여자는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에 대한 신뢰를 제공된 기준에 의거해 신뢰토큰으로 스스로 등록함. 자신의 능력에 넘치는 토큰을 많이 등록 시, 불이익 요소를 발생시키는 요소를 연구해 내재시킬 필요가 있음. 또한 실력평가토큰을 신뢰토큰으로 변화하는 방안 마련 연구도 필요하다. ②참여자들은 비슷한 실력자끼리 1:1로 서로 대화. 면담/전화/SNS 등을 통해 질문과 대답을 한다. ③대화가 많은 자에게 일정 가중치 부여. 대화 회수가 많더라도, 껍데기 대화인 경우 가중치를 더 줄인다. ④참여자들 간 신원 노출 관련 보안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추후 해결할 문제고 해결되어야 한다. ⑤상대에게 실력평가의 신뢰를 먼저 깨는 사람은 참여자 성적을 자동 줄이거나 탈락시킨다. ⑥어떻게 신뢰를 먼저 깼는가를 자동으로 검증해내는 문제는 그문제를 익명으로 사례를 올리고, 참여자들 간의 사례에 대한 평가에 따라 빅데이터 분석 및 인공지능 의사결정 요소 등으로 자동으로 검증해 낸다.
상호 실력 평가에 따른 토큰 이동은 매우 중요하며, 수많은 모의 시행과 수정을 통해 그 완성도를 매우 높여야 한다. 물론 시행 이후 오류에 대한 보완 방법과 후속 조치도 완벽하게 마련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다음 형태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①참여자 개인들이 질문과 대답에서 파악한 상대의 수준의 등급을 참여자 판단으로 매긴다. ②등급을 매긴 근거자료를 작성하고, 이를 모두 공유하게 한다. ③공유한 참여자들은 등급이 매겨진 자료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한다. ④객관적 평가를 근거로 실력평가토큰을 얻거나 잃는다. ⑤누구나 어떤 참여자의 실력 판단에 대해 등급을 매길 수 있다. ⑥특정인에 대해 ‘다수 레벨’ 및 ‘다수 판단’이 존재할수도 있다. ⑦참여자는 일정 기간 동안의 상대방이 준 등급의 상하위00%를 제외한 평균 등급을 유지한다. 00%라는 숫자는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⑧일정기간 평가를 하지 않으면, 평가당하지 않으면, 내 능력이나 토큰이 축소된다.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람 선발 선언
실력 평가 활동 중, 인재가 필요한 곳에서 필요에 따라 선발할 수 있다. 이때, 선발 측에서는 심사단을 구성해 심사자에 의한 검증을 할 수 있다. ①재단 측 시스템은 주기별로 참여자의 평균 등급을 가지고, 심사자 측이 요구하는 내역에 맞게 참여자를 일정 비율로 선정해 공개한다. ②공채 주최 측은 신뢰도와 평가도가 높은 관계 전문가를 일정 기간 동안의 심사자로 위촉. ③심사자와 참여자들은 신뢰도와 평가도를 놓고 1:1로 서로 접촉해 다양한 방법의 질문과 대답을 일정 기간 진행. ④심사자와 참여자 개인들이 질문과 대답에서 파악한 상대 수준의 등급을 스스로 매김. ⑤심사자는 심사에 대한 신뢰도와 평가도를 유지하고, 신뢰도 및 평가도에 따라 신뢰코인을 받을 수 있다. ⑥참여자는 일정 기간 동안의심사자가 평가한 상하위 00%를 제외한 평균 등급을 유지.
인재가 필요한 측의 심사단에서는 다음 활동을 통해 합격자 선언을 할 수도 있다. ①심사자들이 등급을 매긴 것을 기준으로 일정 시점에 일정 비율의 예비 합격자들이 자동 추천됨. 심사자는 추천에 따른 신뢰코인을 받을 수 있다. ②공채 주체 측은 자신의 신뢰토큰을 기부할 면접 위원을 선발한다. 일각에서 볼 때, 면접 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은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③면접 위원은 예비 합격자들의 누적된 등급/심사 자료들을 중심으로 면접 진행. ④면접 위원으로부터 신뢰토큰을 많이 받는 예비 합격자는 자동 최종 합격자를 추천함과 동시에 이들이 합격자임을 선언. ⑤선언 시기는 연중무휴로 하되, 위원회 측이 편의에 따라 주기별로 정할 수 있을 것.
결국, 인간 활동을 컴퓨터에 기록해 이를 바탕으로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을 구한다 하더라도, 사람과 인연을 맺는 행위에는 오류가 존재한다. 만일, 심사 대상이 된 예비 합격자가 어떤 조직에서 선정되지 않는 경우, 심사단 측은 그 이유와 배제에 대한 타당성을 충분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필요에 따라 토큰을 그에게 추가 배정할 수도 있다. 예비 합격자의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선발 측의 뜻과 서로 필요조건이 맞지 않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합격자로 선정되지 않고 있는 자는 응시 횟수/기간/신뢰토큰 등의 기준에 따라 특정업체 공채 참여자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 이 결과에 따라 그 예비 합격자의 자격 지위가 상실될 수도 있고, 한편 다른 측면에서 더 강화될 수도 있다. 이때, 가지고 있는 신뢰토큰은 다른 유사한 곳에 응시하는 토큰으로 사용 가능하다.
위 일련의 활동을 위해, 재단 측은 실력평가플랫폼에 등재된 참여자, 심사자, 면접 위원 등이 서로 1:1로 파악한 결과들을 영원히 유지하고 언제든 누구나 조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당연한 의무요, 책임이다. 또한 이 재단은 인류 역사와 함께 그 맥을 계속 이어가야 하리라는 기대다.
지금까지 나열해 본 ‘블록체인 기대 사례, 실력평가플랫폼과 실력토큰’ 및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람 선발 선언’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하나다. 그 상상 요약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열거했다. 원컨대, 이 거친 요약을 조금 더 다듬을 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임 회피일지도 모르지만, 내 상상의 능력은 무척이나 작고 게으르다. 그러니 또 다른 분에 의해 부디 정보의 공개와 분산이라는 명제가 더욱 뚜렷하게 이어졌으면 한다.
내 행복 토큰화시키기, 그때마다 다르게 느끼기
모든 정보의 공개 원칙은 종종 인권 침해 요소를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미 현재 첨단 문명 사회는 개인의 정보가 서로 공개된 상태다. 이를 활용하는 측이 악의 요소가 없다면, 매우 투명하고 자유로운 신용 사회로 발전할 것은 분명하다. 일견에서는, 어떤 미래에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는 동안 토큰화되리라는 말이 거론되고 있다. 내 아바타가 나와 함께 자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내 움직임, 소리, 표정, 또 내 모든 감정, 그리고 내 몸 자체가 토큰화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즈음엔 당연히 사회나 자연 모두도 토큰화될지 모른다. 과연, 그렇다면 그때 나는 자유로울 것인가. 그때 나는 행복할 것인가. 아마, 자유와 행복이란 정의가 지금과 달라질 것임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는 그동안 내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동이 무수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는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고백하고 싶었다. 그 행동 중, 참으로 마음에 내키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원인은 내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나만의 생각이 나 이외의 것들 사이에 나 스스로 큰 벽을 만들어 왔던 것이라 보여진다. 이것은 결국 나에 대한 욕심이요, 생존에 대한 욕망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쩌면 ‘새로운 문명’이란 ‘이 욕망을 서로 예쁘게 보려는 새 포장이다’라는 생각에 몇 표를 던져본다.
블록체인 이론, 그리고 지금 또한 어떤 이론이 나타나고 있겠지만, 어떠한 이유든 그 모두 인간 행복을 위한 것이리라. 수없이 반복되는 내 일상을 조금 다르게 느끼도록, 그렇게 도와주도록, 문화든 문명이든 발전할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과거 어느 누구든, 그때마다 저마다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나도 그러해야 하리라 외치곤 한다. 지금이라도 나 자신의 기록을 볼 수 있기에 쓸데없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앞으로 나의 빅데이터를 가진 나의 아바타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준다면 당연히 나는또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시행착오일 것을 알면서도, 다시 씁쓸한 웃음을 지을지라도, 내 마음대로 할 것 같다. 왜? 나는 언젠가는 꼭 새로운 행동을 하고 싶으니까? 맞다. 나는 꼭 새로운 내가 되고 싶으니까.
그러나 내가 꼭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 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부처님 손바닥처럼, 블록체인 이론이든 뭐든, 그들 손 안에서 뱅뱅 도는 나를 보는 일이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두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을 어쩔 것인가. 누구나 훤히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래야 한 개의 점으로서 움직일 때마다, 버겁게 느껴지는 무게조차 덜어낼 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 내가 내 블록에 있는 것을 다 덜어내고, 그조차 잊어버리노라면, 그때 나는 어떤 상태가 될 것인가. 하, 참 쓸데없는 상상이다. 그래, 그냥 나면 나고, 점이면 점이고, 블록이면 블록일 뿐. 블록에 블록이 이어지는 다음은? 맞다, 그냥 다음일 뿐이다.
<후기>
KIST SERI에 있으면서 컴퓨터 프로그램보다 시 사랑에 빠졌었다. 젊었었다는 패기로 직업을 과학계에서 예술계로 바꿨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 몸을 담았던 기억이 즐거웠다.
예술계 부정부패 힘과 결별하면서 법조계 고질적 힘의 쓴맛을 봤다. 해외도시개발사업 행정지원업무를 15년 정도 경험하며, 거대 자본가들의 면모를 지켜보았다가 입술을 수십 번 씹어보았다.
세상 기득권 세력의 속속을 알수록 거부감이 든 것은 어쩌면, 멀리 외면하는 일이 내 생리에 맞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들과 태생이 다르다는 이유가 나를 내 길로 가게 한 것이리라. 그랬다, 같은 인간이지만 결코 같아질 수 없는 인간이 존재했다.
그들과 떨어지고 싶었던 때는 아마도 2년이 더 된 듯하다. 삶이 그저 흐지부지된 느낌이었다. 글 쓰는 일도, 돈 버는 일도, 고만고만 시무룩해진 것. 이래저래 책을 다시 잡게 된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모양.
첫 직장 때 감흥이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로 다시 불씨로 살아났다. 평등, 신뢰 뭐 이런 짝사랑했던 단어가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 블록체인플랫폼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 괜한 상상을 나열해 본 것은 그저 해프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렇듯 후기도 남기는 일은 다른 상상을 하기 위함이다. 매듭을 지어야, 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상상을 하는 일이 나를 위한 일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