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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Jan 28. 2022

낮에 나온 '반달' 따라가기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는 우리를 영원한 행복감에 젖게 한다. 함께 부르던 친구들을 보고 싶게도 하고, 그때 보았던 것, 배웠던 것, 먹었던 것, 놀았던 곳, 그 모두를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상상의 고향으로 가게 한다.


한강 위, 전철 2호선을 타고 당산철교를 지나다, 오후 차창가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반달'을 보는 순간, 나의 시간은 멈췄다. 그랬다. 누가 옆에 있다손, 저도 모르게 제 노래를 따라 부르도록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시간이란 가끔 멈추는 것, 지금 반달, 그 멈춘 시간은 영원한 미소의 한 장면으로 넘어가 수십년 이쪽 저쪽을 넘나든다. 이럴 땐, 점점 여리어져 가는 반달같은 눈마다 아롱아롱 그 무엇이 맺혀지는 것이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 줬으면



전철 창가 귀퉁이에 걸친 반달. 더 볼까 말까, 눈 뜰까 말까, 아니 다시 감을까 멈칫, 살짝 창가와 질끈 눈가와 가까운 하늘가 사이에 멈춘 반달. 손톱에 올려놓고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멀리 보이는 그 고향 샘가. 할머니가 매어준, 아니 엄마가 손에 쥐어준 쪽박인가. 고사리 손도 치마끈에 딸랑 매달려 사브작 걸어간다. 그렇게 전철 반달에 매달려, 따라 부르다가 이쪽 저쪽 구름으로 갔다가, 왔다가 또 갔다가 내가 반달이라며 따라 불렀다.


오래 담아두었던 것들을 들추고, 그래서 마음 내키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 이제 남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이라고 반달이 그랬다. 아프다는 것과 안다는 것과 누굴 만난다는 것과 숨 쉰다는 것이란 이제 그 무게가 서로 같아져야 할 것이라고 반달이 또 그랬다. 그래 맞아, 그랬으면 좋겠어, 그렇게 소근소근거리며 따라가다, 말 한마디 한톨이라도 땅에 떨어뜨릴까 쏙 반달 주머니 속으로 꼭꼭 숨는다. 숨어 숨다가 숨죽여 웃는다. 더 듣고 싶다고. 반달아 더 멀리 가라고. 지금 행복이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으로 반달 끝에 있는 샘물 마시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야 인지상정이겠거니, 서로들 제 것을 가지고 나몰라라 자랑하고 다닌다. 서로 자랑거리를 보아주고 보아달라며 먼저 눈을 맞추려 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렇게 자랑하고 다니다가, 문득 하늘을 볼 적, 그 뉘라서 손에 든 것 모두 비우고, 두 손 가슴에 모으지 않을리야. 허허 웃어라, 웃으며 따라오라 손짓하는 반달, 어찌 그 하얀 낮달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으랴. 제 가진 것이 그렇듯 작으매, 어찌 부끄럽지 않느냐며 졸랑졸랑 쫓아가지 않을 수 있으랴.


내릴 곳이 어딘지, 어디였는지 전철 의자에서 일어났다. 문이 닫히기 전에 전철에게 인사했다. 고마워. 반달에게 데려다 줘서 고마워. 집으로 가며, 반달 따라 가며, 반달처럼 내 노래인가, 반달 한 소절만 부르고 불렀다. 보이고 들리는 것 하나 같이 반달과 쪽박으로 보인다. 그렇게 따라가는 노래와 반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로 놀다가 웃다가 내 옷깃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 언젠가 다시 낮에 나온 반달을 보게 되리라. 그때, 나는 또 이렇듯 세상사 내 것 같은 것 홀홀 털어버리고, 딸랑딸랑 쪽박 옷깃에 매단 채, 어디론지 달랑달랑 반달 노래 따라 언제라도 떠나갈 수 있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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