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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수 Jul 30. 2023

DP 시즌2를 보고 나서,

성소수자, 하극상,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하여


D.P 시즌2가 나오자마자 이번 주말을 모두 할애해서 봤다. 시즌1을 워낙 재밌게 봤어서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었다.  내용을 떠나 내용의 재미를 떠나 배우의 연기력을 떠나, 그냥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출처 : Netflix Korea

'3화 커튼콜'에서는 뮤지컬 극단에서 공연을 했던, 한 탈영병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입대 전 극단 시절 '안톤 체호프'의 뮤지컬 '갈매기'에서 여성인 '니나' 배역에 지원했다가, 선배들에게 심한 구타 및 '게이'라는 놀림을 받고 입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혹한 행위는 군대에서까지 이어졌고, 그는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탈영하게 됐다.

'그는 과연 게이가 맞는가?'

게이(Gay)는 동성애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드라마 어디에서도 그가 '동성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그가 보여줬던 사랑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닌 오직 배역 '니나'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알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를 표현하는 단어는, 사회적 성과 육체적 성이 다른 '트랜스젠더(Transgender)'가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한다. 성소수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을 모두 '게이' 또는 '레즈'로 통칭하기는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입할 수 있는 방송 매체가 (제 생각에) 정확하지 정보를 노출한 것은 다소 아쉬웠다.



출처 : Netflix Korea

'4화 불고기괴담'에서는 한 병사가 간부로의 하극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라마의 내용과는 별개로, 드라마를 보면서 멀지 않은 날에 상급자가 될 사람으로서 '상급자는 이러한 하극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답을 전혀 모르겠다. 군대의 위계질서 문란과 더불어 교권의 몰락 또한, 이러한 하극상 상황에서 상급자가 내/외적인 요인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기에 생겨난 사태가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조지프 나이의 개념을 인용해, 'Hard Power'보다 'Soft Power'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Hard Power로 관계된 조직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언급한 용병(사명감 없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도망칠지도 모르는)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반면, Soft Power로 형성된 관계는 서로를 자발적으로 따르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결속력이 단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는 후배들에게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유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다양한 하극상 사례를 보면서, 모든 사람과 Soft Power로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Hard Power로 형성한다 해도 폭력의 부재 속에서는 이 조차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저 못 때리시잖아요." 

폭력은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드라마 같은 하극상이 나에게 온다면 과연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대위는 결국 폭력을 휘두르고 그것이 해결해 준 듯싶긴 한데...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호봉이 오르고, 계급이 오르면서 지휘가 생길 텐데, 내가 하극상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출처 : Netflix Korea

'5화 안준호, 6화 내일'에서는 주인공 안준호 일병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무릅쓰고, 군대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싸운다. 시즌1에서 조석봉 일병이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고 했던 것이 이어지는 내용이다. 시즌2에서는 안준호 일병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 누가 합니까? 어쩔 수 없는 거면,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거면, 그럼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겁니까?"

이번 시즌에서 가장 심금을 울린 대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앞장서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나오는 '비범한 사람'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앞장서더라도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큰 목소리를 낸다면,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일처럼, 세상은 위인들의 항거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시대가 개인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자명하다. 모든 시대는 많은 의견들을 고수했지만, 다음 시대에서는 그 의견들은 틀린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 없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과거에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많은 의견들이 현재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많은 의견들도 미래에 의해 부정될 것이 분명하다.      -스튜어트 밀 '자유론'

시대가 바뀌었으면, 세상도 바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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