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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1년 차, 회사와는 다른 자아가 생기다

< 박사가 되고 싶은 일개미 >

by 주인공김씨

대학원을 다니기 전과 다닌 후 나의 회사생활은 매우 달라졌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처음에는 나만 느끼던 변화였지만 지금은 회사 사람들 중에서도 섬세한 사람들이 간혹 내게 'OO 씨, 요즘 많이 변했네요'라는 말을 건넨다. 나, 천의 얼굴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바뀌지 않고 인간은 고쳐쓸 수 없다"가 지상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만 특별해서, 내가 대단해서 변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자발적인 N잡러가 되다 보니 예전보다 다채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깊은 생각이나 고민 없이 마주하는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몸에 힘을 뺀 자아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뉴 일개미의 탄생이다! 새로운 자아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1. 허허실실 캐릭터의 탄생 : 좋은 게 좋은 거지

과거의 나는 예민보스였다. 다른 회사 사람들은 물론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도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었다. 하나라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법과 규칙을 들이대며 협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전사와도 같았다. 혹자는 내게 "언젠가 너도 부서를 옮길 테고 지금 싸우는 직원과 같은 부서에서 일할 때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우는 거니?"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현재의 위치와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날이 선 대응이나 갈등 상황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듣는 편에 섰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의 말이 끝나면 "좀 더 검토하고 다시 논의하시죠"라거나 "상사에게 보고해 볼게요"라고 하는 상황이 늘었다. 막말로 싸워서 이겨봤자 내 월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데, 뭐 하러 내 에너지를 쓸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진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기본값이 되었다.


2. 멍 때리는 캐릭터의 탄생 : 네? 못 들었는데요?

과거의 나는 기억력이 좋은 캐릭터였다. 필기도 열심히 하고 회사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똑 부러지는 태도로 빠릿빠릿 일하는 직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이미지는 스스로에게 결코 이득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보다 바쁜 직위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도둑놈들 같으니... 이제는 회사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별히 업무를 하지 않을 때나 잠시 휴식 시간에는 논문 주제를 탐색하거나 대학원 시험공부를 하기 때문에 회사업무의 온오프 스위치 전환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시간만큼 멍해지는 것이다. 회사 외에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면서 급한 일이 발생해도 로딩 시간이 예전보다 더 필요해졌으며 일을 끝내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3. 칼퇴핑의 탄생 : 상사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과거의 나는 눈치 보는 캐릭터였다. 휴가나 퇴근도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때를 골라 보고하곤 했다. 조직의 특성상 경직적인 문화에서 눈치는 필수, 휴가와 정시퇴근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휴가는 상사가 먼저 직원들에게 자신의 휴가일정을 알리고 난 다음에야 내 일정을 잡는 등 눈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시퇴근은 필수가 되었다. 이전에는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직원들 모두 퇴근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부서에서 내가 제일 먼저 퇴근한다.(물론 일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다!) 처음에는 먼저 퇴근한다고 상사에게 말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이제는 퇴근봇이 되었다. 5시 58분부터 짐을 싸기 시작하고, 6시가 되면 퇴근인사를 마친 후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같은 자아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변했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한 것 같았다. 나 역시 변한 자신이 마음에 든다. 회사에 힘을 빼니 연봉이나 승진에 목매지 않고 기회가 된다면 성취해야 하는 성질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신 대학원에 매진해서 스스로의 능력치를 개발해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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