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들보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게 더 잘 대해줬고 대학 때는 남학생, 여학생 구분 없이 어울리며 그저 친구로 잘 지냈다. 직업을 구할 때도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남성과 동등한 조건이라고 생각했고 회사에서는 연차라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기에 불합리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여성이어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일과 가정이 충돌하는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서다.
40대를 앞두고 나는 임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싫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30대 초반에는 임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자연임신을 시도했지만 임신 소식은 한동안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시험관 시술을 생각하게 되었고 깊은 대화 끝에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내게도 아이가 찾아올 날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고민의 기로에 서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승진 대상자에서 계속 누락되던 내가 승진 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회사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회사에서 추진하는 업무가 있는데 그동안 해보지 않은 신사업이라 처음부터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야근과 주말 근무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사업이 성공적으로 첫 삽을 뜨고 프로세스를 확립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회사는 그 일의 적임자가 나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승진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근도 불사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락하기 망설여졌다. 그 제안을 수락한다면 스트레스 관리와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기 위해 회사를 쉬어야 하는 시험관 시술에 지장이 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여성인 걸까. 왜 내게 어느 쪽도 기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없는 두 가지 옵션이 동시에 주어진 것일까. 어떤 선택을 해야 미래의 내가 조금 덜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은 내가 나이가 있으니 임신을 우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이 맞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임신을 선택해야 미래의 나와 우리 가정이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 다시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100%의 확신으로 임신을 선택할 수 없는 자신이 그저 무기력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당장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만을 쫓기보다는 능력과 환경을 둘 다 병행할 수 있도록 집중하고, 둘 다 해내 보기로 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남편과 회사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두 가지 모두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결정이 닥쳤을 때 임신을 선택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주어진 일정에 따라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스케줄을 소화할 것이다. 미래의 내가 그때 포기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버티기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오력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