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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Jan 30. 2021

우리 집에는 AI가 산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남편은 자기가 해결사라도 되는 줄 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남편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해결책을 내놓거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놓거나. 기껏 내놓은 해결책도 '이게 말이야 방구야?' 싶을 정도로 쓸모없을 때가 많다. 나는 남편한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과 감성인가.


남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감지한 건 연애할 때였다. 우리는 장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거리 정도는 되는 연애를 했는데도 거의 매일 만났다. 그러다 일 때문에 3일이나 못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3일 아니 30일을 못 만나도 좋기만 하지만 그때는 연애할 때라 3일이 3년 같았다.



"오빠... 3일이나 못 만나서 어떡해. 너무 보고 싶겠지?"



나는 진지한데 남편은 개그콘서트라도 본 것처럼 깔깔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무슨 소리야. 너 없이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고작 3일 안 본다고 죽냐?"



내 눈에 살짝 맺혔던 눈물이 머쓱해져 바싹 말라버렸다.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은 이과 감성을 뽐냈다. 어떨 때는 이 사람 직업이 과학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 번은 겨울방학 때 연수를 듣는데 강의실이 너무 추워 발이 시렸다. 꽁꽁 얼어붙은 발로 겨우 집에 와서 남편한테 말했다.


"오늘 강의실 너무 추워가지고 발 시려서 혼났어."


나는 "그랬어? 고생했네.", "많이 추웠겠다." 같은 반응을 기대했다. 남편은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발이 시린 이유를 설명해줬다.


"원래 찬 공기가 아래로 가니까 발이 제일 추웠던 거야."

"아오! 누가 그런 거 알려주래?"


남편은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몇 달 전 일이다. 남편은 출근했고 나는 아이와 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어깨부터 등까지 심하게 아팠다. 앉아있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서 있다가 앉는 것도 고역이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증상 때문에 도수치료까지 받았던 터라 겁부터 났다. 이 몸으로 온종일 아기를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남편한테 카톡을 보냈다.


"오빠, 나 등이 너무 아파 ㅠㅠ"


돌아온 답장은 기가 막혔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이번에는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프다는데 한다는 소리가 고작 이런 거라니. 약이 바싹 올라서 남편이 보낸 카톡을 노려보고 있자니 남편이 꼭 AI처럼 느껴졌다. AI를 흉내 내며 남편이 보낸 메시지를 소리 내서 읽어봤다.


"죄송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없어요."


와, 이렇게 찰떡일 수가. 그러고 보니 남편은 AI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내가 부르기 전에는 먼저 말을 안 걸고,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하, 가끔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까지. 그렇다. 나는 AI와 살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한 뒤에 남편이 보낸 카톡에 관해 이야기했다.


"오빠는 무슨 AI야? 내가 아프다는데 한다는 소리가 고작 '도와줄 수 없다'?"

"그럼 학교에 있는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

"도와줄 수 없지만 '많이 아파?' 정도로 대답할 수도 있잖아. 걱정해주기만 해도 마음이 좀 나아졌을 텐데."


남편은 내 설명을 들은 뒤에야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이후로 한동안은 내가 책을 읽고 있어도, 빨래를 개고 있어도, 밥을 먹고 있어도 내 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많이 아파?"라고 물어봤다.


이런 지독한 학습 능력. 당신은 AI가 확실합니다.



빅스비한테 아프다고 해 봤다. 내 남편보다 나은 것 같기도 ㅠㅠ 분발하자 남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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