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채원 Jan 28. 2021

부부싸움, 어디까지 해 봤니?

달라도 너무 다른

신혼은 싸울 일이 넘쳐나는 시기다. 남이었던 사람과 같은 집에서 살다 보면 매일 문화 충격과 성격 차이를 느낀다. 연애와 결혼은 또 달라서 며칠에 한 번씩 만나 데이트하며 알던 사람과 매일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는데 연애 기간이 짧아서 더 그랬는지 많이도 싸웠다. (아, 물론 지금도 싸운다.) '부부싸움이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싸우는 이유도, 방법도, 화해하는 모습도 가지가지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생각해보니 시기별로 큰 특징이 있었다. 6년 동안 우리 부부싸움 시기별 특징, 일명 '부부싸움 변천사'를 한 번 정리해봤다.


1단계 무식해서 용감하게 싸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였거늘, 신혼 때는 지피지기가 안 되니 늘 백전백패였다. 놀랍게도 둘이 싸웠는데 둘 다 백전백패. 이기는 사람은 없었고 상처와 후회만 남았다. 싸움도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상대방에게 잘 먹히는 스킬이 어떤 건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은 어떤 건지, 상대가 공격해 왔을 때 현명하게 방어하는 방법은 어떤 건지 같은 것들. 처음에는 그런 걸 모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를 위해 맹렬히 돌진했다.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둘 다 나가떨어져야 싸움이 끝났다. 우리는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씩씩대며 상처를 끌어안고 너부러졌다. 그때는 젊어서 그랬는지 짧은 휴전 기간을 거치면 또 금방 에너지가 충전됐다. 충전된 에너지는 당연히 다음 전투에 썼다. 싸움이 일상이었다.


2단계 남편이 싸움을 피하기 시작했다. 

길어지는 싸움에 남편이 먼저 지쳤다. 남편은 싸움을 피하려고 했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 나랑 눈도 안 마주쳤다. 그렇다고 순순히 돌아설 내가 아니었다. 나는 혈기왕성했고 싸울 힘이 넘쳤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나면 남편한테 내가 지금 '너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는 걸 꼭 알려줘야 직성이 풀렸다. 말하자면 선전포고를 한 거다. 필사적으로 싸움을 피하고 싶었던 남편은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할 해결책을 찾아주려 애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나 오빠가 ~해서 너무 우울해."
"난 의사가 아니잖아. 우울증은 정신과 의사랑 상담해."


"아 짜증 나. 오빠가 ~라고 말해서 기분 상했잖아."
"짜증 나면 이따 밤에 술 한잔하면서 풀어."


나는 나를 화나게 만든 원인이 남편이라는 걸 강조했는데 남편은 '원인은 모르겠고 해결은 다른 데서 하라'는 식이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라.", "술이나 마시고 풀어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전의를 상실했다. 이쯤 되면 벽보고 얘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도무지 나랑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 같았다. 남편이 원하던 대로 싸움은 줄었는데 대화도 같이 줄었다.


싸움이 줄었다는 게 늘 좋은 신호는 아니다. 대화가 없어지자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다. 우리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대화가 없으니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할 지경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집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다. '내 방 거실'이 있을 정도로 넓은 집에는 살아야 남편이랑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에는 괜히 마음이 허해서 인터넷으로 집 근처 원룸도 많이 찾아봤다. 남보다 불편한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힘들어 '입주 엄마' 말고 '출퇴근 엄마'가 되고 싶었다.   


3단계 남편이 화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끔 싸울 일이 생겼다. 예전보다 덜 싸운 덕에 남편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는지 남편이 먼저 화해하자고 손 내밀 때가 많아졌다. 싸울 때와는 달리 화해는 단순했다. 내 표정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내 입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오면 이미 게임 끝. 그냥 화해한 거다. 남편도 그걸 아는지 이상한 방법으로 화해를 시도했다.


상황 1

남편: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야! 밥 먹자!
나: (갑작스러운 등짝 스매싱에 놀라) 아악!

내 입에서 목소리가 나와 게임 끝.

 

상황 2

남편: (빵과 커피를 사 와 건네며) 미안해.
나: ( '흥! 웃기시네. 이 정도에 풀릴 줄 알아?' 하는 생각을 하며 무표정 유지)
(정적)
남편: (아이의 보석 스티커를 가져와 내 미간에 붙이며) 인도 공주 같다.
나: (어이가 없어서) 풉.  

내가 웃어버려서 게임 끝.


가끔은 기분 좋게 화해할 때도 있다. 남편이 퇴근길에 꽃다발을 사 왔을 때는 너무 좋아서 싸운 것도 잊어버리고 와락 안길 뻔했다. (안겼었나?) 너무 좋아서 이런 엔딩이라면 더 자주 싸워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현명하게 싸우고 지혜롭게 화해했다.

너무 좋아 몇 달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남편과 싸우면 힘들다. 얼마 전 남편과 또 싸웠다. 그때 일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너무 달라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싸우면서 남편이 한 말 중에 이해하기 힘들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사실이잖아. 틀린 말도 아닌데 왜 기분이 나빠?"


남편은 어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 때문에 내 기분이 나빠졌는지 안 나빠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내 기분이 더 중요한데.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도 답답했다.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도 답답했다. 


"예전에 여보가 그랬잖아."


맞다. 예전에 내가 그랬다. 그런데 그건 예전일 뿐이다. 지금 내 생각은 다르다. 남편이 과거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지금 내 생각은 어떤지 물어봐 주면 좋겠다.


남편도 나랑 싸우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순간이 많을 거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욕심을 버리는 데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우리가 정말 평생 같이 살 수 있을까?






이전 05화 남편이 집안일을 다 한다고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