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를 하면서 자주 다퉜다. 그중에서도 신혼집을 정할 때 가장 팽팽하게 대립했다. 남편과 내 근무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혼집 위치 정하는 게 어려웠다. 딱 중간지점에 살기로 하면 공평했겠지만, 지도에서 중간지점을 찾아보니 그 곳은 끝없이 논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논밭 사이에도 집은 있었겠지만 우리 둘 다 주택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꼭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다. 아파트가 있는 곳을 찾다 보니 후보지는 두 군데로 좁혀졌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우리는 의견이 달랐다.
나는 A 지역에 살고 싶었다.
A 지역 특징
우리 학교까지 차로 15분, 남편 학교까지 차로 1시간
인구 6만 OO군 군청 소재지
마트나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몇 개 있지만 대형마트나 영화관은 없음
남편은 A 지역이 너무 시골이라 싫다며 B 지역이 좋겠다고 했다.
B 지역 특징
우리 학교까지 차로 50분, 남편 학교까지 차로 20분
인구 28만 OO시에 위치
고속도로가 가까워 우리 학교까지 운전하기 어렵지 않음
나는 면허는 있었지만 운전을 못 했다. 그래서 B 지역은 절대 안 된다고 맞섰다. 남편은 운전이야 배우면 되고 우리 학교까지는 고속도로 타고 쭉 직진하다 국도로 빠져서 또 직진만 하면 도착이니 어려울 게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 B 지역 이야기를 꺼낸 순간부터 이미 기분이 상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도 매일 편도 50분 거리를 출퇴근하려면 힘들 텐데 운전을 배워서 출퇴근하라니. A 지역이라는 대안이 있는데도 말이다. 목숨 걸고 출퇴근하라는 말이냐고 협박도 해봤지만, 남편은 양보할 기미가 안 보였다. 나도 강하게 나갔다.
"그래. 운전을 배운다 치자. 그래도 매일 왕복 2시간씩 출퇴근은 너무 힘들 것 같아. 만약에 우리가 B 지역에 살게 되면 나는 집안일 하나도 안 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응."
응? 집안일을 안 해도 된다고? 예상 못한 답변에 얼른 머리를 굴려봤다. 사실 거리는 멀지만, 남편 말대로 직진만 하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A 지역보다 B 지역이 훨씬 살기 좋은 것도 맞다. 집안일을 남편이 다 한다면 나쁘지 않은 조건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던진 미끼를 내가 물어버렸다.
우리는 B지역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나는 약속한 대로 집안일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걸레가 어딨는지 몰라 전화해서 물어봐야 할 정도였다. 이대로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살게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결혼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남편이 설거지하고 난 주방 상태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남편이 빨래하는 횟수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집안일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일은 내 일이 되고 말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 남편이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열려있는 안방 문 뒤쪽은 그냥 지나가는 걸 발견하고는 참지 못하고 남편을 불러 세웠다.
"오빠, 방 문을 닫고 이 뒤쪽도 청소해야지."
"거길 왜? 너 결벽증이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결벽증 소리를 들을 줄이야. 결국,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다.
"청소기 이리 줘!"
다시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남편은 내가 청소하니까 집이 더 깨끗하다고 손뼉을 쳤다. 내친김에 그동안 마음에 안 들었던 화장실 청소도 다시 했다.
"와! 나 태어나서 여보처럼 화장실 청소 잘하는 사람 처음 봤어."
아오, 말이나 못 하면.
결국 남편이 모두 떠안았던 집안일은 조금씩 나에게 넘어왔다. 배신감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어쩌겠는가. 남편이 집안일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인지 확인 안 한 내 탓인 것을. 남편이 집안일을 다 한다고 했을 때, 남편 자취방에 처음 갔던 날을 떠올렸어야 했다. 그날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검정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텔레비전이 나에게 분명 말했었다.
"너의 남자친구는 먼지에 관대하단다."
그 말을 흘려들은 대가는 가혹했다. 결국 집안일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억울했지만 힘든 일은 또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50분이라는 건 차가 안 막힐 때를 기준으로 계산한 거였다. 퇴근할 때는 차가 막혀서 학교에서 집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피곤에 쩔은 몸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갈 때면 '이 고생을 하면서 사는 걸 보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도 단단히 지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