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목을 달고 나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결혼 전에는 이해가 안 됐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건 당연한 건데 그게 어떻게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연애할 때 서로 성격이 잘 맞는지 확인부터하고 결혼을 했어야지. 고작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다니 성급하고 무책임한 사람들 같았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걸 진심으로 사과한다. 결혼해보니 성격 차이는 '고작'이 아니었다. 연애할 때는 '고작'이었던 단점도 같이 살면서 매일 보고 있으려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성격 차이라는 말은 진짜 성격 차이뿐만 아니라 부부의 모든 차이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식습관 차이, 생활 습관 차이, 종교의 차이, 경제 관념 차이, 자녀 양육관 차이 등등. 이런 차이들을 전부 성격차이라고 부르는 거다. 종교, 경제 관념, 자녀 양육관 같은 중대한 일에 서로 생각이 다르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물론 식습관 차이나 생활 습관 차이로도 며칠이고 몇 달이고 싸울 수 있는 게 부부다. 원래 갈등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양말을 벗어 놓는 방법이나 치약을 짜는 방법 같은 것들에서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부부
나와 남편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일단 취향부터 확실히 다르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를 때면 잘 고르다가도 마지막에 꼭 서로 다른 색깔을 고른다. 심지어 몇 가지 색 중에 내가 워스트로 꼽은 색을 남편은 베스트로 꼽는다. 내가 베스트로 고른 색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남편도 "그런 색을 누가 사느냐"고 질색을 한다. 음악 취향은 또 어떤가. 둘 다 신나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는데 '신나는 음악'의 기준이 다르다. 남편은 유재석이랑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 "당가다 당가다 당가다 당"하는 90년대 댄스 가요를 좋아한다. 나도 그런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플레이리스트를 90년대 댄스 가요로 가득 채우면 좀 질리는 기분이다. 남편이 운전하다 나한테 신나는 노래 좀 틀어주라고 하면 나는 '도시적인', '감성 힙합', '그루브' 같은 말이 들어간 재생 목록을 고른다. 그런 노래들은 쉽게 질리지 않아 도착할 때까지 들을 수 있다. 이런 내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노래가 나오는 내내 어깨 한번 들썩이지도, 고개 한번 까딱이지도 않고 바른 자세로 운전만 한다.
생활습관이나 식습관도 하나도 안 맞는다. 나는 춥든 덥든 습하든 건조하든 잠깐씩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쾌적한 온습도를 맞춰놓고 그걸 오랫동안 유지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나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같은 음식을 연속으로 먹는 건 싫어하는데, 남편은 가리는 음식이 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끼니마다 먹어도 크게 신경 안 쓴다. 얼마나 신경을 안 쓰냐면 내가 임신했을 때도 시도 때도 없이 냉동 핫도그만 들이밀 정도였다.
"오빠, 나 비빔밥 먹고 싶어."
"응, 냉동실에 핫도그 있어. 데워 줄게."
"그거 말고 비빔밥 먹고 싶다고."
"배고파서 그런 거야. 배부르면 생각 안 나."
"오빠, 나 냉면 먹고 싶어."
"응, 냉동실에 핫도그 있어."
"오빠, 나 만두 먹고 싶어."
"응, 핫도그 먹어."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꼭 늦은 밤이나 새벽에 뭘 먹고 싶다고 하긴 했다. 간단한 음식이라도 그 시간에 준비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임신 기간 내내 핫도그만 먹이다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핫도그는 쳐다보기도 싫다.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해
그래도 이런 차이들은 귀엽게 봐줄 수 있다. 우리 사이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대화 습관 차이다. 나는 남편이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퇴근하고 나서 그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남편은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잘 안 한다. 그러니 언제나 말하는 쪽은 나였는데, 문제는 남편이 중요한 얘기가 아니면 잘 듣지도 않는다는 거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남편은 별 반응도 없이, 듣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정도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 나는 혼자 한참을 떠들다가 남편한테 묻곤 한다.
"오빠? 듣고 있어?"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듣고 있다고 대답하지만 나는 말을 이어나갈 마음이 안 생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도 남편한테 쓸데없는 말을 안 하게 됐다. 남편은 조용해진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대화도 없이 같이 살려니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혼자 산다면 편하기라도 할 텐데. 대화가 줄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졌다는 거였다. 그때쯤 둘째가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단어를 말했다.
"마시따아!"
"어머! 지금 맛있다고 한 거야? 맛있다고 한 거 맞아?"
"마시따! 마시따!"
이런 순간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바로 "이따 남편 퇴근하면 꼭 말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1초도 안 돼서 "아 맞다, 우리 얘기 잘 안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내 아이가 커가는 순간순간의 감동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진 나도 안쓰러웠고, 자기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는지 모른 채 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남편도 불쌍했다. 이렇게 같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성격 차이는 명백한 이혼 사유라는 것을.
사막을 건너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이글거리는 태양도, 타는 듯한 목마름도, 가파르고 험한 길도 아니라 신발 속으로 파고든 모래 알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살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신발 속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다. 부부 사이에서 성격 차이는 바로 이 신발 속 모래 알갱이 같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지만 나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괴로운 것. 신발 속 모래 알갱이의 존재를 한 번 알게 되면 그다음 발을 내딛기도 전에 미리 거슬리게 마련이다.
부부의 성격 차이를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건데 우리는 갈등을 대화로 풀려고만 하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나는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설명하기 바빴고 남편은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고 답답해하기 바빴다. 끝없는 평행선을 그리는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하다 보면 나빠질 게 없을 것 같았던 우리 사이는 더 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