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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Feb 06. 2021

성격이 달라서 다행이야  

가끔은 행복

다시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과 나는 너무 다르다. 우리가 부부가 되어 6년이나 같이 살고 있다니, 내 인내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끈기면 앞으로도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남편은 또 얼마나 독한지 나랑 6년을 살았다. 우리가 6년 동안 같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성격이 완전 다르다는 거 아닐까? 응? 성격 차이는 명백한 이혼 사유라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성격이 달라서 좋은 점도 있다. 


나랑 성격이 똑같은 남자를 상상해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펄펄 끓었다가 차갑게 식는 사람. 별일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굴고 날을 세웠다가 큰일에는 또 심드렁한 사람.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우울하면 땅속 까지 파고 들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랑 산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둘이 동시에 뜨거워지고 동시에 차가워지면서 내는 시너지 효과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우울한 두 영혼이 힘을 합쳐 더 깊은 우울의 구덩이를 파 내려가면 누가 꺼내 줄 것인가.  


다행히 우리 남편은 AI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감정 기복이 없다. 감정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다. 남편은 내 감정이 거센 파도처럼 출렁이는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남편은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파도가 잦아들길 기다려준다. 시간이 흘러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나면 내 마음에도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 온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나면 나랑 같이 요동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남편한테 꼭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건다. 


"오빠! 나 오늘 기분 진짜 좋아!"

"어휴"

"왜 한숨 쉬어?"

"꼭대기까지 올라온 거 보니까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네."


순식간에 김이 팍 새면서 기분이 확 가라앉는다. 내려갈 일만 남았다던 남편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아니, 틀릴 수가 없다. 남편 때문에 기분이 자주 나빠지지만, 남편 덕분에 또 금방 평온을 되찾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덕에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 이것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무 달라서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역할이 확실하다. 각자 자신 있는 걸 하다 보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 아이들의 기분 변화를 알아채고 마음을 읽어주는 건 내 몫이다.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고 아이들 입맛에 맞게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내가 더 잘한다, 아이들이랑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같이 읽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대신 용기가 필요한 일은 다 남편 몫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나는 멘붕에 빠져서 손부터 덜덜 떠는데 남편은 침착하게 병원에 데려간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이나 눈썰매장에서도 겁 많은 엄마보다는 스릴을 즐길 줄 아는 아빠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는 관심사도 확연히 다르다. 나는 알아주는 기계치라서 전자기기에 관심 많은 남편한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오빠 TV가 안 켜져!”

“코드 꽂아.”

“와 천재! 오빠 진짜 똑똑해!”

“제발 머리 좀 써.”


우리 집에서 이런 대화는 흔하다. 사실 이 글도 남편이 새로 사준 아이패드로 쓰고 있는데 방금도 ‘TV’를 쓰려고 남편을 소환했다. 


“오빠, 이거 키보드 영어로 바꾸려면 뭐 눌러야 한댔지?”

“왼쪽 아래 지구본 모양” 


나를 너무 잘 아는 남편은 내가 버튼을 못 찾을까 봐 걱정됐는지 대답을 해 놓고도 나한테 다가왔다. 남편은 아이패드 화면을 힐끗 보더니 답답해하며 말했다.


“키보드가 있는데 화면에 키보드는 왜 띄워놓냐?”

“내가 그런 거 아닌데? 원래 이렇게 돼 있었는데?”

“없애면 되잖아.”

“어떻게?”

“이렇게.” 

“와 진짜 천재!” 



화면에서 키보드를 치우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남편이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감탄한다.


“우와, 세상 진짜 좋아졌다. 별게 다 되네.”

“응.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면 @$%@$@$#%#%$#”


남편이 입이 마르도록 설명해봤자 나한테는 그냥 외계어다. 나야 뭐 다음번에 또 그 기능을 쓰려면 남편을 소환하면 된다. 이 남자랑 결혼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갑자기 결혼을 엄청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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