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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Feb 22. 2021

남편이 생일선물로 아이패드를 사줬는데...

가끔은 행복

새해가 되자마자 남편이 올해 생일 선물로 아이패드를 사주겠다고 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여러 개 떠올랐다.


'내 생일은 2월인데 선물을 벌써 정했어?'

'휴대폰은 갤럭시를 쓰는데 뜬금없이 왜 아이패드지?'

'나는 기계치라 아이패드를 사줘도 쓸 줄 모르는데?'

'제일 중요한 건, 난 아이패드를 갖고 싶지 않다고!'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남편에게 물었다.  

"왜?"

"여보는 브런치 작가잖아. 아이패드 정도는 써줘야지."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놓고 아이패드로 글 쓰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들어오는 사람들과 나가는 사람들로 출입문은 계속 열렸다 닫혔다 하고 테이블마다 두 세 명씩 모여서 수다를 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손가락을 움직여 타자를 치는 내 모습을. 오 쫌 멋진데? 아, 이게 아니지. 얼른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남편이 이유 없이 나한테 잘해줄 리가 없다. 분명 꿍꿍이속이 있을 터. 내 생일선물이라는 명분 아래, 내 명의(?)로 산 아이패드는 주인 잘못 만난 탓에 방치되다가 남편 차지가 되고 말겠지? 남편의 검은 속내가 훤히 보였다. 나름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남편은 나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배송이 늦어질지도 몰라서 미리 주문했어."


아이패드는 생일을 한참 남겨놓고 도착했다. 실물을 보니 확실히 예쁘긴 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안아보기도 하고 내려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남편이 세팅해주겠다며 자기 계정으로 로그인하려고 하길래 얼른 손을 잡아 막았다.


"어어? 이런 식으로 오빠 걸로 만들 셈인가 본데?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 아니야!"


어차피 언젠가는 넘겨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넘겨주긴 싫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생일 선물인데. 며칠 뒤 남편이 주문한 키보드와 마우스도 도착했다.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내 껀가? 남편은 이제 아이패드로 글을 쓰라고 했지만 나는 컴퓨터가 편했다. 남편이 "아이패드를 사줬는데 왜 쓰지를 않느냐"고 물어보는 날에만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바로 옆에 익숙하고 편한 컴퓨터를 놔두고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차라리 남편한테 "이제 그만 너의 계획대로 아이패드를 가져가렴."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묵혀서 똥이 되더라도 남편 좋은 일을 시키기 싫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남편은 아이패드가 똥이 되는 걸 지켜보는 게 안타까웠던지 아이패드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여보 3월에 복직하잖아. 그럼 아이패드로 학급일지도 쓰고 상담일지도 쓰고 회의한 내용도 다 여기에 기록할 수 있어."

"회의한 내용도? 다들 업무일지 쓰는데 혼자 아이패드 들고 회의 들어가면 너무 튀지 않을까?"

"요즘 시대에 누가 업무일지를 써. 다들 아이패드 쓰지."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는 한 번도 아이패드 가지고 회의에 들어오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학교가 너무 시골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휴직한 1년 반 사이에 학교도 많이 변했나? 남편 말이 진짜인지 가려내려 애를 쓰고 있는 사이에 남편이 또 훅 치고 들어왔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회의할 때 쓸 갤럭시 탭 s7+가 필요할 것 같아. 여보 생일 선물 미리 사줬으니까 내 생일 선물도 좀 미리 사주면 안 돼?"


와, 계획이 이거였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심지어 남편 생일은 10월이다. 다가올 생일보다 지나간 생일이 더 가까운데 벌써 선물 타령이라니. 이럴 때 보면 참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갤럭시 탭은 사줬냐고?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했다. 사주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1년 반째 휴직 중이므로. 그런데 타이밍 좋게 갑자기 돈이 생겼다. 친구들끼리 몇 년째 하는 여행계가 있는데,  이름만 여행계지 멤버들의 임신, 출산, 그리고 코로나로 여행은 못 가고 돈만 모으고 있었다. 돈 관리를 담당하는 친구가 앞으로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돈도 꽤 모였으니 기분 좋게 백만 원씩만 나눠 가지자는 제안을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갤럭시 탭이 떠올랐다.


"오빠! 갤럭시 탭 얼마야? 나 백만 원 생겼어!"

"아 진짜? 나 사도 돼? 진짜로?"


입이 귀에 걸려서 갤럭시 탭을 주문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뿌듯한지. 그나저나 우리 남편은 참 복도 많다.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한 것도 모자라서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자마자 돈도 같이 생기다니. 부럽다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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