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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Mar 16. 2021

우물쭈물하다가는 결혼합니다

결혼을 고민하는 당신께

청첩장을 받았다. 또 한 커플이 결혼이라는 무덤에 제 발로 들어가려나 보다. 청첩장 속에서 수줍은 듯 활짝 웃고 있는 내 친구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예비 신랑의 표정을 보니 아직 결혼 생활이 얼마나 험난할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하긴, 나도 그랬다. 네이트판에 숱하게 올라오는 결혼 생활 고민 글은 다 조작인 줄만 알았고, 드라마에 나오는 백허그 설거지 장면이 현실적이라고 믿었다. 결혼해서 힘든 점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남 얘기일 뿐이라며 가볍게 넘겼고, 내 인생에는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았던 결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내가 비혼에 실패한 원인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인생 곳곳에는 결혼에 빠지게 하는 함정이 숨어 있다. 2, 30대가 결혼 적령기로 불리는 이유는 그때가 가장 결혼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이리라. 나를 함정으로 유인한 강력한 미끼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남편의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는 미끼를 나는 덥석 물어버렸다. 


한때는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인데,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가장 사랑할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나에게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이별을 고했는데 몇 명 더 만나보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때 그놈'만 한 사람이 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에 희망 고문을 당하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벤츠를 하염없이 기다릴 자신은 있는가. 결국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면 결혼에 빠져버리는 거다.


사람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연애의 엔딩은 이별이거나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예컨대 '이만큼 만났으면 오래 만났고, 헤어질 마음은 없으니 결혼하자.' 하는 식이다. 연애의 엔딩이 연애일 수는 없는지 묻고 싶지만, 결혼을 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니 입 다물고 있으려고 한다. 아기가 먼저 생겨서 결혼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런 커플은 축복해주고 싶다. 두 아이를 낳은 엄마로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며 결혼을 결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결혼해서 정말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는 묻지 않기로 한다.


나는 비혼을 만만하게 여기는 비혼주의자였다. 결혼 안 하고 살면 비혼이지 비혼이 뭐 별거겠나 싶었다. 그러던 내가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대열을 멍하니 쳐다보다 어느샌가 그 틈에 끼어서 결혼에 골인해버렸다. 정신 차려보니 결혼식도 혼인 신고도 끝나 있었고 낯선 신혼집에 덜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러니 진심으로 비혼을 고민 중이라면 정신을 바짝 차리길 바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처럼 결혼에 빠지고 만다. 


얼마 전, 비혼에 진심이었던 친구가 결혼했다. 그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세상 사람 모두가 결혼해도 이 친구는 안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어디에도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연애는 꾸준히 했지만 남자 친구와 적당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되어 자식을 위해 희생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 친구의 꿈은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자유롭게 사는 거였다. 그런 그녀가 결혼이라니, 도대체 신랑이 누굴까 궁금했다. 그녀가 결혼 결심하게 된 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서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해버리니 같이 놀 사람이 없어졌다. 결혼 말고 연애만 하고 싶었는데 연애가 조금 길어지면 남자들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 생각은 없다고 정중히 이별을 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기를 몇 번, 그러는 사이에 괜찮은 남자는 다 유부남이 되어있었다. '결혼을 할 것이냐, 연애도 못 할 것이냐'라는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패배를 인정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비혼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다.


내가 6년 전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비혼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나도 버티고 버티다 결국에는 항복을 외치고 누구라도 만나 결혼을 했을 것 같다. 비혼, 그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달콤하기에 이렇게도 이루기 어려운 것일까. 아직 결혼이라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은 생존자들에게 부탁한다. 부디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말고 비혼의 길을 걸어가 주시라고. 나는 갈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그곳에서 행복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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