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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도 선생이라고

선생님도 상처 받는다.

by 김채원

(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금요일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하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누웠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 실컷 울고 시원하게 다 털어내 버리자.'


그러니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면,

저런 것도 선생이라고


라는 말을 들어버렸다. 그것도 우리 반 학생한테.


학생이 내 험담을 하는 걸 들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7년 전 옆 반 여학생이 우리 반 여학생과 싸우다가

"너는 너네 담임 닮아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라고 했던 게 처음이었다. 그때는 눈물은커녕 웃음이 나왔다.

'왜 가만히 있는 나를 가지고 그래?'

'내가 이 나이에 열두 살짜리 꼬맹이한테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어야겠어?'

하는 마음에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학생은 내가 잘 모르는 아이여서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벌써 11월. 3월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우리 반 아이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을 직접 들은 건 아니었다. 우리 반 학생 재환이가

"선생님, 지훈이가 선생님한테 저런 것도 선생이라고 지랄한대요."라고 했다.

옆에 있던 지훈이는 당황한 얼굴로

"지랄이라고는 안 했어!!"라고 소리쳤다.

'지랄'을 했는지 안 했는지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 '저런 것도 선생이라고'까지는 확실히 한 것 같았다.


지훈이와 조용히 얘기하고 싶어 지훈이를 데리고 빈 교실에 갔다. 지훈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지훈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건 4교시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업 중에 지훈이가 누군가에게 큰소리로 "ㅆㅂ ㅇㅂ하고 자빠졌네."라고 욕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지훈아~ 욕은 하지 말자."라고 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지훈이의 기억에는 앞 뒤로 한 장면씩이 더 있었다. 유리가 지훈이한테 "f*** you"라고 욕을 했고, 지훈이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유리한테 욕을 했다는 것이다. 먼저 욕을 한 쪽은 유리인데 내가 지훈이한테만 욕을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화가 나서 "저런 것도 선생이라고"라는 말을 했다고.


지훈이의 이야기를 듣고 지훈이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담담히 털어놨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했을만한 일이었고, 내 입장에서도 여전히 억울하다고. 니가 욕을 한 걸 듣고 '욕은 하지 말자'고 말한 건, 선생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선생님은 몸이 하나라서 교실에 있는 24명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을 수는 없다고. 만약에 억울한 일이 생기면 "저런 것도 선생이라고"라는 말 대신 왜 억울한지 이야기해주라고. 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 일은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한참을 혼자 울다가 나보다 교직 경력이 훨씬 많은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남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안아줬다. 그러고는 내 잘못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뱉기도 한다고, 남편도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때도 내 잘못은 아닐 거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위로를 받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 받은 마음은 쓰라렸고,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 말대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는데, 나는 그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약해빠진 내 자신이 또 싫어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내 탓으로 돌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상한 사고 습관이 또 발동했다.


이미 일어난 일, 곱씹어봤자 속만 상하니 잊어버려야겠다. 다행히 이런 일이 금요일에 일어나서 마음 추스를 시간이 이틀이나 있음에 감사하며 월요일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며 밝게 인사하는 연습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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