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그게 정말 싫은 사람일지라도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적당한 하이톤 목소리에 지루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빠르기로, 상냥하면서도 발랄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친절하기는 또 얼마나 친절한지 물어본 건 물론이고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자세히 알려주곤 했다. 나는 그녀와 1년 동안 함께 근무했다.
처음엔 내가 그녀를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쁜 외모에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진 그녀가 점점 불편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와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건 질투나 자격지심 같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주 쓰는 대화법의 특징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부풀리기'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이 지난번에 맡은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깔끔하게 그 일을 처리해냈는지, 이번에 맡은 일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등. 그녀는 그녀의 능력도, 그녀가 처한 상황의 곤란함도 커다랗게 부풀려 말하곤 했다. 얼마 전 브런치 작가 레이블 '팀라이트'에서 함께 활동하는 스윗드림 작가님께서 쓴 글을 읽다 알게 됐는데 그런 사람들을 '공작새'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녀를 1년 동안 겪은 입장에서 '공작새'라는 단어처럼 그녀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업무상 궁금한 게 있으면 그녀에게 먼저 묻곤 했다. 그녀는 늘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줬지만 돌아설 때마다 영 찝찝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화려하고 장황한데 실속이 없었다. 내가 궁금했던 알맹이는 쏙 빼놓고 그 주변을 빙빙 돌며 겉만 핥아 설명해주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은 후,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길고 긴 말들이 결국 '사실 나는 모른다.'라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무식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일쑤였고, 몸이 약해 자주 아픈 그녀를 배려해주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마음 넓은 그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물론 '그러려니'까지 가려면 최소 며칠은 그녀와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운이 나쁘면 같은 소리를 3번, 4번 듣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그녀는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자신의 권리는 최대로 챙기고 의무는 최소로 행한다는 거다. 그녀는 하이에나처럼 호시탐탐 연가나 병가를 쓸 기회를 노렸고, 보상도 없는 귀찮은 일은 귀신같이 잘도 피했다. 그녀가 힘든 일을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는데 썼던 전략으로는 울면서 떼쓰기, 아파서 못한다고 하기, 같은 팀에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자기가 빠지겠다고 하기 등이 있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겠으면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쉬울 뿐이었다.
그녀는 일할 때뿐만 아니라 거의 항상 공작새 깃털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비싸고 좋은 것만 샀고, 고급지고 맛있는 것만 먹었는데 그 설명이 상상을 초월했다. 가령 떡볶이 하나도 그녀가 주말에 먹었던 떡볶이는 그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인데, 그 떡볶이 집에서 쓰는 떡은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쌀로,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방앗간에서 뽑은 가래떡이며 그 떡볶이 집에서 쓰는 어묵은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어묵 회사에서도 가장 비싼 어묵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떡볶이에 들어간 가래떡과 어묵의 출신(?)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수 있는지, 그리고 '가장 맛있고', '가장 좋고', '가장 유명한' 이 정말 근거가 있는 건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떡볶이 한 번 먹은 일을 이렇게까지 부풀려서 말할 수 있는 그녀의 말솜씨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녀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 번씩 그녀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아무래도 쉽게 잊기는 힘든 캐릭터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떡볶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끔은 나도 그녀처럼 근거가 있든 없든 내가 가진, 내가 먹는 것들이 '가장 좋은 것', '특별한 것'이라고 여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사과 한 알을 먹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사과로 가장 유명한 지역에서, 그 지역에서도 가장 유명한 농장에서, 농부님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정성껏 기른 사과인데, 마침 올해 날씨까지 도와줘서 작년보다 당도도 식감도 훨씬 좋아 '프리미엄 사과'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과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날은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배울 점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내가 모르는 것도 마치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유려한 말솜씨가 그것이다. 나는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타입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기보다 뭉뚱그려 말할 때가 많다. 숲에 소나무도 있고 전나무도 있고 밤나무도 있다고 설명하고 싶은데 나는 자주 '숲에 나무가 많다'고 말하고 만다. 세상에는 숲을 보는 사람도 있고 나무를 보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만 글을 쓸 때는 숲도 나무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 욕심이 자주 생긴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나무를 설명하는 사람의 롤모델이 되어줬다.
그녀와 함께 한 1년 동안 그녀가 깃털을 펼칠 때마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피곤하고 거슬리고 짜증도 났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 배울 점이 있었으니 그 시간들이 결국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싫은 사람의 싫은 부분은 돋보기를 댄 것처럼 더 크게 보인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의식적으로 가상의 돋보기를 다른 곳에 비춰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싫은 사람일지라도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그 점을 잘 캐치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