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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내 생일이 좋아질 것 같아.

고마운 사람들에게 하는 고백

by 김채원

밥을 먹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생일에 불만이 많았다. 그때는 생일이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파티는 늘 비슷비슷했는데, 초대장을 만들어 친한 친구들에게 돌리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친구들이 가져온 선물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하나 풀어보는 게 기본이었다. 나는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축하하러는 자주 다녔지만 정작 내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해보지는 못했다. 왜냐면 내 생일은 늘 방학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통신수단이라고는 집 전화가 전부였고, 초등학생이 방학 때 여러 친구들을 초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초대장을 돌리는 것부터가 번거로웠다. 학교에 다닐 때는 친한 친구들 책상에 초대장을 올려놓으면 끝날 일인데 방학 때는 집집마다 찾아다니거나 우편으로 보내야 하니 감히 엄두가 안 났다. 전화로 초대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초대장 돌리기'는 생일파티의 핵심 코스였기 때문에 빼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나는 방학 때 태어났는지 참 못마땅했다. 그뿐이랴. 희한하게 나는 늘 내 생일에 졸업을 해서 졸업과 생일을 한 번에 축하받아야 하는 것도 조금 억울했고, 가끔은 생일과 설 연휴가 겹쳐 온 가족이 설날에만 집중하는 것도 서운했다.


살다 보니 '생일이 뭐 별거냐' 싶은 생각이 들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20대 초반의 어느 생일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적당히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에게 문자메시지가 온 게 시작이었다.

그: 뭐해? 오늘 생일이네? 축하해.
나: 그냥 집에 있어. 고마워.

답장을 보내자마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생일인데 그냥 집에 있다고? 왜?"

"그냥 뭐. 생일이 별 거냐."

"아무리 그래도 생일이잖아. 너 친구 없어?"

"응. 없어."

"내 친구들이라도 부를 테니까 나와."

마침 심심하기도 했던 나는 적당히 친했던 친구와, 처음 보는 사람 몇 명과 함께 동네 술집에서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생일 파티를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축하받았던 이 이상한 경험보다 내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생일이 있다. 그날의 기억 때문에 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됐다. 신혼 때였다. 남편과 나는 자주 싸웠고, 싸우고 서로 말을 안 하는 날도 많았다. 우리는 코딱지만 한 집에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익숙했다. 그날도 그랬다. 이미 며칠 전에 싸워 말을 안 한지 오래였는데 평소와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내 생일이었다는 거였다. 내 마음속에는 '그래도 생일인데 축하한다고 먼저 말 걸어주겠지.'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날 하루는 참 길었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도록 남편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는 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혼술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울적해진 나는 터덜터덜 집 앞 마트에 소주를 사러 갔다. 마침 아파트 입구에 순대 트럭이 있길래 순대도 사 왔다. 식탁 위에 놓인 순대 1인분과 소주 한 병이 참 초라해 보였다. 그날 혀 끝에 닿던 소주의 온도와 눈물을 꾹꾹 참아가며 씹던 순대의 향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생일이 다가오는 게 싫다고 아무리 울어봤자 시간은 흐르고 또 생일은 온다. 생일 전날 밤, 남편이 부엌에 가더니 미역을 불렸다. 나는 괜히 질색을 하며 그만두라고 했다.

"아우~ 무슨 미역국이야. 됐어. 냅둬."

"왜~여보 생일인데 미역국은 당연히 끓여야지."

"생일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은 누구였더라?"

남편은 내 기습 공격에 당황했는지 말을 살짝 더듬었지만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 그때는.. 여보가 정말 꼴도 보기 싫었어."

남편은 미역을 불려놓고 마트에 가더니 시금치며, 돼지고기, 당면 같은 것들을 사 와 잡채도 만들었다. 나는 남편이 달라진 게 믿기지 않아 재차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나 곧 죽어? 이번이 마지막 생일이야? 갑자기 왜 이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마지막 생일일 수도 있지."

(아오 이걸 그냥 확.)


어색한 기분 좋음을 즐기느라 잠을 못 자고 있었는데 생일이 된 순간, 그러니까 12시가 딱 되자마자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학생에게 장문의 축하 카톡이 왔다.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정성껏 메시지를 쓰고, 12시가 되기를 기다렸을 꼬맹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이번 생일은 시작부터 눈물바다였지만 눈물의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생일날 아침, 식탁에는 남편이 차린 생일상과 함께 남편이 써 놓은 손편지가 있었다. 앞으로 더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말에 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조금 지나니 집으로 꽃다발이 배달됐다. 이게 정말 내 생일이 맞단 말인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좋은 일만 생기니 살짝 의심스러웠다. 오후에는 친한 동생이 깜짝 방문을 했다. 딸기가 듬뿍 올라간 케이크에 고급스러운 스카프까지 선물 받았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하루였다.


그날은 저녁에 스티브 작가님, 나모다 작가님과 함께 구글미트에서 만나 영어 공부를 하는 날이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Happy birthday"를 외쳐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영어 공부가 끝나고 스티브 작가님이 피아노로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해주셨다. 거기에 나모다 작가님도 바이올린으로 합주를 해주셨다.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라 더 감동이었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나를 위해 스페인에서 피아노를, 서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주시다니. 내가 받은 감동이 너무 깊고 내가 느낀 고마움이 너무 커서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두 작가님께서 읽게 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It was the best birthday ever

그 외에도 여러 지인들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선물을 받았고,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에는 보름달이 떴다. 눈이 오는 걸 보기 힘든 지역인데 눈도 펑펑 내렸다. 달빛에 비친 눈 내리는 겨울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벅찬 마음으로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다.

"달님,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처음으로, 오래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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