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채원 Mar 14. 2022

우리는 매일 밤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 시국의 여행법

육퇴는 언제나 짜릿하지만 요즘엔 육퇴가 더 기다려진다. 육퇴 후 우리 부부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옆에 자는 척 누워있다가 아이들이 잠든 게 확실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심조심 일어나서 거실로 나간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리모컨을 누가 잡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여행 유튜브니까. 


"곽튜브 새 영상 올라왔다!"

"나 그거 어제 보려다가 자기랑 같이 보려고 안 봤어."

"히히. 잘했어."


우리 부부가 여행 유튜브를 즐겨본 건 작년 여름부터였다. 원래 여행을 자주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이자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거실 창 밖으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 누구는 떠나는구나. 나도 떠나고 싶다."를 연발하다가 대리만족이라도 해보겠다며 여행 유튜브를 검색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까 싶어 TV를 켰다. 그런데 웬걸, 처음 여행 유튜브를 본 날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결국 그날 나는 TV를 켠 채로 잠이 들었다. 유튜브에는 내가 가고 싶은 모든 곳이 다 있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때문에 여행은 커녕 출근이나 등교처럼 당연했던 일상도 빼앗겼는데, 집에서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다시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여행 유튜브도 유튜버마다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여러 영상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즐겨찾는 유튜버도 생겼다.  우리의 최애는 '곽튜브'와 '빠니보틀'이다. 그들의 영상은 실패한 적이 없다. 그들은 어쩐지 친근하면서도 편안한 이미지로, 엄청난 친화력을 보이며 현지인들과 금세 가까워졌다.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아무거나 잘 먹으며(아, 이건 곽튜브만 해당), 아무 데나 잘 가는 그들의 여행 스타일도 동경의 대상이다. 겁 많고 비위 약한 나는 감히 시도도 못할 일들에 그들은 기꺼이 즐겁게 도전한다. 대리만족을 위해 보기 시작한 여행 유튜브인데 그들이 내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니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돈 한 푼 안 내고 하루에 몇십 분 투자해서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 문득 '나는 코로나가 끝나도 여행을 가지 않고 여행 유튜브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닐 것 같다. 영상으로 떠나는 여행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곳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는 있지만, 그 곳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그 곳의 온도를 느낄 수 없는 건 늘 아쉽다. 그들이 아무리 음식 맛을 설명해줘도 그 맛을 직접 느낄 수 없는 건 정말이지 분하다. 게다가 나는 여행이란, 여행을 가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누구와 어떻게 갈지 계획할 때의 그 설렘, 여권을 챙겨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누빌 때의 기대감,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승무원들과 나만큼이나 상기된 표정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다른 승객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반가움. 여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여행이 끝나면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함께 짐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의 편안함도 여행의 과정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것도 여행이다. 그러니 나는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나 대신 여행을 다녀주는 유튜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특히 얼마 전 빠니보틀이 잠시 여행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해서 더더욱 마음이 쓰인다. 분명 그도 여행이 좋아서 여행 유튜브를 시작했을텐데 인기가 많아지는 만큼 부담도 커지고, 그 부담이 여행을 '일'로 느껴지게 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그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즐거워하고 위로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3월의 주제는 <여행>입니다.


https://url.kr/7nprea


http://www.instagram.com/teamwright__


https://maily.so/teamwritelight?mid=b0703d


매거진의 이전글 첫 해외여행을 기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