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시아버지를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명절이란 무엇인가?', ' 성묘란 무엇인가?', ' 벌초란 무엇인가?' 결혼 후 명절만 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같이 따라오는 의문으로는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 누구를 위한 성묘인가?', ' 누구를 위한 벌초인가?'가 있다.
결혼 후 명절마다 시댁에 먼저 들렀다. 명절 아침에는 시댁 큰집에 들러 성묘를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부모님이 제주 여행을 가신다고 해서 부모님 여행 스케줄에 맞추느라 친정에 먼저 들렀다. 여전히 친정에 있던 추석 날 오전,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건 꼭 알아야 될 일이라는 느낌이 왔다. 남편을 계속 추궁해 결국 진실을 알게 됐다. 아버님과 통화를 했는데 아버님은 우리가 아침 일찍 시댁에 올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성묘도 가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안 와서 서운하셨나 보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시댁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시댁에 가는 차 안에서 '성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돌아가신 분의 묘를 보살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라도 고인을 기리고 싶은 마음까지는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걸 꼭 전 국민이 같은 날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온 가족이 다 함께 가야 하는지도.
시어머니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놈의 성묘"라고 하셨다.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성묘를 따라다닌 한이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우리 시아버지는 명절이나 성묘에 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철저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기에도 어머님이 사람 많이 안 몰릴 때 미리 성묘를 다녀오자고 제안하셨음에도 '명절 당일 성묘' 원칙을 고수하셨다.
성묘란 무엇인가? 아버님께 성묘란 무엇일까? 직접 여쭤보고 싶지만 일장 연설이 이어질 것 같아 여쭤보지 않기로 한다.
사실 우리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모두 살아계신다. 명절이라도 친정과 시댁을 챙기다 보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는 찾아뵙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생전 한 번도 뵌 적 없는 시댁 어르신들 성묘에 명절마다 따라다니고 있다.이게 맞는 건가 싶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아버님이 이해가 되면서도, 또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 문득, 명절마다 시댁에서 어머님이 해놓으신 맛있는 명절 음식에 소주를 2병씩 비워대는 며느리가 아버님은 이해가 될까 싶다. 그래, 우리는 어차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