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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Oct 13. 2022

카카오톡 이모티콘 플러스 구독 해지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바야흐로 구독 경제의 시대다. 월정액만 내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넘쳐난다. 음악이나 동영상을 원하는 대로 감상할 수 있고, 전자책도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나도 '첫 달 무료'라는 마케팅에 혹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그중 오랫동안 애정하던 카카오톡 이모티콘 플러스 정기 구독을 오늘 해지했다. 애정했던 만큼 해지하는데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처음 이모티콘 플러스를 만난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모티콘의 종류가 너무 많아 뭐부터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카카오는 내가 메시지를 입력하는 동안 관련 이모티콘이 있는 단어를 따로 표시해주며 이모티콘을 쓰라고 알려줬다. 가령 내가

"잘 잤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라는 메시지를 입력하면 금세 입력창이

"잘 잤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이렇게 바뀐다. 잘 잤어? 터치하면 '잘 잤어?'와 관련된 이모티콘이 주르륵 나고, 좋은 하루를 누르면 '좋은 하루'와 관련된 이모티콘이 촤르륵 나다. 나는 카카오가 다 차려준 이모티콘 밥상을 보고 어떤 이모티콘에 젓가락을 댈지만 정하면 됐다.


이모티콘은 유용할 때가 많았다. 특히나 단톡방에서 누군가에게 축하나 위로를 전할 일이 있으면 너도나도 "축하드려요.", "힘내세요."같은 말들을 하게 되는데 이미 앞에서 여러번 나온 말을 앵무새처럼 또 따라하기는 싫을 때 이모티콘 검색창에 '축하'나 '위로'를 입력하면 마음을 센스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이모티콘들이 많이 나왔다. 이모티콘은 글로는 미처 다 표현 못할 생생한 감정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모티콘 플러스 서비스는 이모티콘으로 내 개성을 마음껏 뽐내기에 최적화된 서비스다.


그게 문제였다. 어느 순간 이모티콘이 없으면 메시지를 보내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점점 이모티콘에 의존했다.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하는 대신 이모티콘 검색창에 '우울'을 검색해 내 마음과 가장 비슷한 이모티콘을 보냈고, "진짜 웃겨."라고 말하는 대신 '폭소'를 검색해 배꼽 잡고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내 어휘력과 표현력이 빠르게 저하되는 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요즘 아이들을 걱정할 게 아니었다. 명색이 브런치 작가라는 사람이 이모티콘 중독에 빠져 글로는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게 된 것이다.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이모티콘 플러스를 해지한 건 아니다. 잘 쓰고 있는 걸 끊으려니 아쉽기도 했고 해지를 하자니 귀찮기도 했다. 그러다 어제 이모티콘 플러스 정기 결제 완료 메시지를 받았다. 3,900원이 결제됐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3,900원만 내면 이모티콘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으니 무조건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어제는 3,900원을 내가며 내 어휘력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비스를 해지했다. 해지하는 과정마다 카카오는 '지금 해지하면 다시는 20% 할인된 가격인 3,900원에 이모티콘 플러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나를 협박했다. 3,900원이 할인된 가격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살짝 흔들릴 뻔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왜냐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고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르는 재미에 빠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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