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행복
주말은 청소로 시작해야 기분이 좋다. 쾌청한 가을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먼지를 싹 쓸어내고 나면 이제야 좀 주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주변을 닦고 있는데 세탁기에 다 된 빨래를 가지러 갔다 나오던 남편이 갑자기 내 볼에 뽀뽀를 한다.
어머나
드디어 우리 부부 사이에도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지는가. 나도 이제 다정한 남편의 담백한 스킨십을 기대해도 되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퉁퉁 부은 내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잘 잤냐고 물어보는 남편. 미지근한 물을 한 잔씩 나눠마시고 출근할 때 잘 다녀오라고 가벼운 포옹을 하는 남편. 오후 3시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는 남편. 퇴근 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면 살짝 웃어주는 남편. 이런 게 이제 내 이야기가 되는 걸까? 볼 뽀뽀 한 번에 평생 할 오버를 다 해 가며 달콤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 꿈을 단박에 박살 내 버렸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거야."
아니, 저 인간이.
"내가 왜 미운 놈이야?"
"맨날 말을 안 듣잖아."
"내가 언제 말을 안 들었어?"
어휴. 계속해 봤자 입만 아픈 의미 없는 말싸움은 빨리 끊는 게 좋다. 어쨌든 남편은 앞으로 미운 놈에겐 떡을 줄 테니 조심하라고 했다. 이런 실없는 소리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좋다. 그런데 그 실없는 소리가 주말 내내 나를 꼼짝 못 하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을 불러도,
"오빠!!!!!"
"어어~? 말투가 왜 그래? 예쁘게 다시 말해봐."
입술을 쭉 내밀고 다가온다.
"오, 오빠.. 미, 미안해.. 하지 마.. 오지 마..!!!!!"
"한 번만 봐준다. 앞으로 잘해."
얄밉게도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남편이 불러서 홱 돌아보며 대답을 해도,
"왜?"
"어어~? 표정이 왜 그래? 예쁘게 다시 쳐다봐."
또 입술을 쭉 내 밀고 겁을 준다.
"하, 하하, 내 표정이 어때서 그래? 잘 봐~ 웃고 있잖아~"
눈물을 감춘 피에로 같은 표정으로 비굴하게 입만 웃어 보인다.
남편은 나보다 6살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능숙하게 나를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한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마음대로 하는 편이고, 남편이 다 들어주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고 실컷 떠드는 쪽은 내가 맞지만 결국 모든 일은 남편이 원하는 대로 진행된다. 남편이 똑똑한 건지 내가 다루기 쉬운 건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날로 장난이 진화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다. 저런 유치한 장난을 몇 살 까지 치려나. 아니, 나는 저런 장난에 몇 살까지 놀아나려나. 이번 생에 내 팔자에 로맨스는 없는 게 확실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속 터지고 때로는 헛웃음이 나는 이런 코미디 같은 결혼 생활, 어차피 코미디가 될 거면 빵빵 터지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