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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Oct 31. 2022

꿈이 너무 커서 현실이 시궁창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만족을 모르는 나와 당신을 위한 글

때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시작도 못하게 만든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을 하나도 못 쓰거나,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다가가지도 못한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겨우 첫걸음을 내디딘 후에도 걸림돌이 되곤 한다. 마감 기한은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공들여 쓰느라 진도가 안 나가거나, 용기 내 다가간 그에게 웃음을 주려고 무리수를 두다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한다. 너무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한결 수월해지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갈 미래의 꿈나무라거나 우리나라를 빛낼 일꾼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했다. 장래희망에 의사, 변호사, 연예인, 대통령쯤은 적어야 했다. 아무도 '대충 살아도 괜찮다', '현실에 안주해도 된다'라고 말해주지 않았기에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실패자가 되는 것 같았다. 


잔인하지만 묻겠다. 마음에 품었던 큰 꿈들, 모두 이루었는가? 가 먼저 답하자면 나는 내가 '겨우'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 마트에서 시금치를 집어 들었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다시 내려놓게 될 줄은 몰랐다. 청소, 빨래, 설거지를 다 끝내고 한숨 돌리려는데 그 사이 애들이 어질어 놓은 거실을 보며 한숨을 쉴 줄은 몰랐다. 잔뜩 불어난 살을 헐렁한 티셔츠 안에 감추고 빨리 코트를 입을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릴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내가 꿈꿨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뤄 시금치가 얼마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늘 깔끔하고 정돈된 집에서 살고 있을 줄 알았다. 꾸준히 운동해서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유지할 줄 알았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성장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다. 그깟 시금치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 손이 좀 떨려서 그렇지. 청소를 하고 나면 5분 정도는 깔끔하고 정돈된 집에 있을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1만 보 이상 걷고 있고 자주 책을 읽고 자주 글을 쓰며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타이트한 계획을 세워본다. 매일 독서 100페이지, 매일 브런치 글쓰기, 매일 1만 보 이상 걷기, 경제적 자유를 위한 파이프라인 만들기. 꿈이 너무 크다. 이제 겨우 뒤집기를 해 놓고 내일부터 달리기를 하겠다는 꼴이다. 너무 큰 꿈은 실패와 좌절을 가져온다. 반복된 실패는 무력감을 가져오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꿈은 큰데 현실은 시궁창인 게 아니라, 꿈이 너무 커서 현실이 시궁창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언제나 우리를 괴롭게 한다. 당장 현실을 높여 이상과의 간극을 줄일 수 없다면, 일단은 이상을 낮춰 현실과의 차이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고 꿈을 완전히 버리라는 건 아니다. 현실이 시궁창처럼 느껴져서 괴로운 '나'를 잘 달래 보자는 거다. 지금 내가 가능한 속도로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거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다독이면서. 애벌레처럼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는 하늘을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줄타기(이상과 현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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