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채원 Nov 01. 2022

아이 앞에선 자나 깨나 말조심

애들이 그대로 배운다고요

큰딸이 4살 때였나. 화가 나면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철렁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웠을까? 어린이집에서 저런 말을 할리는 없고, 어린이집이 아니라면 집에서 배웠을 텐데… 그럼 혹시 내가 저런 말을 했었나? 나는 아이 앞에서 저런 말을 한 기억조차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아이가 저 말을 자주 할수록 내 마음속 죄책감은 커져갔다. 언제 누구한테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가지고 그렇게 괴로워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범인은 내가 아니라 안나였다. 안나가 누구냐고?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의 여동생, 안나 공주 말이다. 겨울왕국에는 안나와 엘사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안나가 엘사를 향해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우리 아이는 한참 스펀지처럼 언어를 습득할 때라 영화에 나오는 대사도 그대로 따라 했던 거다. 나 때문이 아니라니 다행 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아이 앞에서는 더 말을 조심하게 됐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 하다 보니 아이들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아이들이 내 기분 상하게 하거나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아냐고?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에 나온 말을 따라 하거나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하시는 말을 따라 한다. 신규 때 가장 속상했던 말은 “선생님은 우리 아빠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잖아요.”였다. 내 월급이 나랏돈은 맞는데, 마치 나를 자기 아빠가 고용한 직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거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는 건데 아이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힘이 쭉 빠졌다.


세월이 조금 흘렀는지 요즘에는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없다. 대신 더 무서운 말을 한다.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교육청에 신고할 거예요.”, “저는 촉법소년이라 괜찮아요.” 갈수록 가관이다. 아, 오해는 마시라. 내가 정말 아동학대를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위협을 느꼈다며 아동학대라고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기 싫은 걸 시키면 교육청에 신고한다고 협박을 한다. 그런 말을 할 때의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아동학대’나 ‘신고’라는 말을 그냥 재미있는 농담이나, 유행어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말은 장난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며,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기분이 매우 안 좋다는 걸 알려주긴 하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농담을  듣게 된 현실이 서글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들은 죄가 없다. 아이들이 듣는데서 그런 말을 한 어른들 잘못이다.


유독 욕을 많이 하는 친구들도 있다. 요즘 유튜브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거친 입담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유튜버들이 많다. 아이들은 그런 유튜버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만 18세 미만 유튜브 금지법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아이들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을 전부 뺏어버릴 수도 없고, 아이들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감시를 할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다. 나는 아이들이 욕을 많이 하는 게 정말 유튜브 때문인 줄만 알았다.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얼마 전, 두 딸을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는 이제 막 하원하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놀러 온 어린이집 아이들과 유치원생들이 많았다. 간혹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네도 밀어주고 미끄럼틀도 태워주며 놀고 있는데, 거친 욕설이 들렸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험한 욕을 퍼부었다.

“야이 쉐끼야!!!!! 빨리 안 내놔? 씨발, 이 싸가지 없는 쉐끼!!”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에 있는 무언가를 그 남자에게 줬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부자지간이 맞는데… 자기 아들한테 저렇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들은 아이는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을까. 저런 아빠와 함께 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욕을 익혀 프로 욕쟁이로 살아갈 아이가 안타까웠다. 제발, 아이 앞에서는 말조심 좀 하지. 자신의 화를 여과 없이 아이에게 욕으로 퍼부은 그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서 아빠랑 싸웠어요.”, “아빠가 담배 끊는다고 해 놓고 몰래 피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혼났어요.” 같은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누구 엄마는 술을 마시는구나’, ‘누구 아빠는 담배를 피구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다. 그냥 몰라도 될 남의 가정 이야기를 알게 되어 괜히 불편할 뿐이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님이 어제 자기 앞에서 욕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 속상하다. 아이 앞에서는 조심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나랑 상담 전화할 때는 그렇게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분이셨는데, 아이 말로는 어젯밤에 티브이를 보다가 엄마가 “저 새끼 아주 지랄 염병을 하네”라고 했단다. 이 글을 읽고 뜨끔한 엄마 아빠가 분명 있을 거다. 이 글은 그런 분들 보라고 썼다. 선생님과 통화할 때 완벽히 이미지 관리해도, 아이 앞에서 욕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이 앞에서는 자나 깨나 말조심!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기 전에 준비 운동, 독전감 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