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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Nov 18. 2022

요즘 애들은 신조어를 모른다.

어쩔티비와 쿠쿠루삥뽕은 알면서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누구나 그렇듯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다 보니 해마다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많아진다.  갈수록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돌 노래를 찾아듣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기 위해 출퇴근할 때 음원 차트에 있는 노래를 1위부터 순서대로 듣는다. 처음에는 노래 제목과 그 노래를 부른 그룹, 그 그룹의 멤버들까지 외우려고 했는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봐도 내 눈 요즘 아이돌은 다 똑같이 생겼다. 우리 때 가장 인기 많았던 HOT 오빠들과 핑클 언니들 이름은 아직도 외우건만 요즘 아이돌은 구별하기도 어렵다. 나이가 들면 안면 인식도 어려워지나 보다. 그래도 노래는 계속 듣다 보 귀에 익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 옆에서 같이 흥얼거릴 수준은 된다. 내가 요즘 노래를 따라 부르면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쌤이 이런 노래도 알아요?"

이 말을 들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신조어 공부다. 인터넷에 '신조어 테스트'를 검색하면 이게 한국말이 맞나 싶은 단어가 수십 개 나온다. 뜻을 알기 전에는 그 뜻을 짐작도 못하다가 뜻을 알고 나서는 기발함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하고, 별걸 다 줄인다 싶어 허무하기도 하다. 내친김에 신조어 테스트 몇 개 해 보시라.


문제

1. 갓생

2. 캘박

3. 저메추

4. 웃안웃

5. 스불재

6. 킹리적갓심

7. 주불

8. 당모치

9. 억텐

10. 갑통알


정답

1. 갓생: 'God + 생'으로 부지런한 삶을 의미.

2. 캘박: 캘린더 박제. 약속을 캘린더에 적어놓는다는 의미.

3. 저메추: 저녁 메뉴 추천. 비슷한 말로 점메추 있음.

4. 웃안웃: 웃긴데 안 웃김.

5.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

6. 킹리적갓심: 합리적 의심에 King과 God을 붙여 거의 확실함을 의미.

7. 주불: 주소 불러.

8. 당모치: 당연히 모든 치킨은 옳다.

9. 억텐: 억지 텐션. 반대말로 찐텐이 있다.

10. 갑통알: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겠다.


신조어가 우리 언어를 훼손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세종대왕님이 지하에서 노하실 일이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신조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신조어를 쓰는 것도 언어유희의 일종이지 않을까. 우리 어릴 때도 어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다 견뎌가며 '방가방가'니 '안습'이니 '킹왕짱'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는가. 그때 우리가 우리말을 다 파괴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하고 큰 뜻을 품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말이 고작 신조어 몇 개에 파괴될 리도 없다.


어쩌면 신조어는 하나의 문화다.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이 같은 세대 내에서 소통하는 도구다. 해외에서 우리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듯, 그들도 수많은 어른과 꼰대들 사이에서 신조어를 쓰는 세대 만의 반가움이 있지 않을까.


사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신조어를 검색해 공부해도 크게 쓸모는 없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쓰는 신조어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작년에 썼던 신조어를 아직도 쓴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안물안궁 쿠쿠루삥뽕'은 2년째 매일같이 듣고 있다. 신기한 건 어쩔티비와 쿠쿠루삥뽕도 진화를 한다는 거다. 원래 '어쩔티비'는 '어쩌라고? 티비나 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게 '저쩔티비'로 진화하더니 나중에는 온갖 가전제품을 다 들먹였다. '어쩔냉장고', '저쩔세탁기'에서 '어쩔 엘지 디오스 양문형 냉장고', '저쩔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키친핏'까지 나왔다. '어쩔' 뒤에 붙는 말이 길면 길수록 상대방을 더 킹받게* 했다. ('열받게'의 신조어)


내가 보기에 신조어의 끝판왕은 '쿠쿠루삥뽕'이다. 'ㅋㅋㄹㅃㅃ'이라고 초성으로만 쓰기도 하는 이 말은 놀랍게도 아무 뜻이 없는 말이다. 우리가 웃음의 의미로 자주 쓰는 'ㅋㅋㅋ' 처럼 그냥 웃음소리다. 도대체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를, 아무 뜻도 없는 그 말이 전국 초등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쿠쿠루삥뽕'을 변형해 '국그릇삥뽕'으로 쓰는 걸 봤다. '국그릇삥뽕'을 들은 아이는 '밥그릇삥뽕'으로 화답했다. 참 기발하지 않은가.


신조어를 쓰는 게 아이들만의 문화이자 개성의 표현이라는 건 내 짐작일 뿐이다.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신조어를 쓰는 아이들에게 신조어를 쓰는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너네는 신조어를 왜 쓰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신조어가 뭔데요?"


신조어를 쓰는 아이들이 신조어를 모른다. 요즘 아이들의 어휘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빈약하다는 건 매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도 '신조어'를 모를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신조어를 쓰는 건 여전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조어'만' 쓰는 건 분명 걱정해야 할 일이다.


언어는 많은 기능을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신조어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좋은 도구지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감정이나 태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신조어만 쓰는 아이들은 신조어만큼의 세계만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신조어를 즐기면서 어휘력도 늘릴 수 있도록 어른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언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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