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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Nov 14. 2022

언어의 신비

언어인가 연어인가

저는 언어를 좋아합니다. 언어만 좋아했다고 봐도 맞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음악도 제법 좋아합니다. 가이드계에 입문하면서 회화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화랑이나 박물관보다는 공연장이나 직접 연주하는 걸 좋아합니다. 실상 음악도 소리라는 범주로 본다면, 언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회화 또한 언어를 이미지화하여 남긴 것이라 한다면, 회화도 그 뿌리는 언어가 될 겁니다. 아니, 사실은 어떤 게 먼저인지를 논한다는 건 의미가 없죠. 소리는 태고적부터 세상 만물이면 예외 없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글자는 소수 또는 집단지성에 의해 만든 발명이자 역사의 출발을 긋는 것이니까요. 글자 이전에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분명 그림이었을 테니까요.


학창 시절 국사, 세계사 등의 수업시간에 배운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우리나라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 벽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 회화야말로 진정 인류의 오랜 염원과 생의 의미를 발견해 준 인류의 첫 문화유산이라 봐야 할 듯합니다.


좌측부터 프랑스 라스코, 스페인 알타미라, 한국 울주 대곡리 벽화들 (출처: 구글, 위키)


의사소통 수단인 인류의 언어는 흩어져 없어지고 마는 소리의 진동에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돌, 풀, 흙, 비단, 대나무, 종이 등 긁어 남길 모든 재료에 소리의 흔적을 새겼습니다. 그림에서 글자로, 필기도구의 발명, 발전, 진화와 더불어 이제는 블로그와 브런치 등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사실과 의견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두고두고 전해지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글만 남기지 않죠. 소리도 시공을 초월해 어디서든 접속만 하면 들을 정도 입니다. 글과 소리가 같이 나오는 영상은 또 어떻고요. 우리 머리 위로 오가는 무수한 무선망을 선으로 그려본다면 반도체보다 더 빽빽한 밀도로 뒤덮고 있을 겁니다.




왜 인류의 조상은 지역과 인종, 나라를 막론하고 이렇게 남기고 싶어 했을까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분들이 자신의 인스타와 블로그에 일상과 정보를 남기고, 브런치 작가를 응모하고 떨어지기를 거듭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남기려 하는 것일까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해야지만 생존을 보장받던 시절. 공동체의 최우선 과제인 survival을 위해 식량 확보가 절대적이었겠죠. 이어지는 결과로 자손번창에 대한 기원까지. 마음과 마음이 모여 부족 대표인 족장 또는 사제의 주도 하에, 비밀리에 이루어졌을 법한 일들. 그래서 밝은 바깥을 놔두고 굳이 어두컴컴한 동굴까지 들어가 그림을 남긴 게 아닐까... 라고들 추정합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살아야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살아남아야 내 자식도 이어져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혼자서 노트에 적기만 해도 될 내 언어의 족적을 왜 이렇게 보이는 곳마다 남기려 드는 걸까요. 언어의 출발이 애당초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나도 나 자신을 언어로 정립하면서 보다 명료하게 알아가고자 하듯, 내 앞에 마주하는 당신을 막연하게, 그저 좋아한다는 정도로만 표현하기엔 시원치 않아서,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끄집어내서 남기려는 거. (갑자기 분위기 연애편지)


혼자서 홀인원 골프를 치는 것도 비할 수 없는 호쾌함을 맛보겠지만, 쉼 없이 똑딱거리며 오가는 탁구처럼 내가 건넨 언어에 되돌아오는 당신의 반응에서 언어의 신비를 시나브로 알아갈 거예요. 그 신비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누구든 예외 없이 엄마의 태에서부터 시작을 하죠. 그래서 우리가 쓰는 말을 부국어라 아니하고 모국어母國語라 하잖아요. 이후 살면서 선생님, 친구, 동료, 멘토의 영향을 받지만, 그래도 우리의 무의식적인 심성에는 가정, 특히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지요. 저도 예외일 수 없고요.


엄마의 언어에서 넘어가 다른 말인 외국어로 입문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합니다. 의무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선택에 따라 프랑스어에 발을 들이며, 여건상 슬로바키아어와 스페인어를 무작정 따라 해야 했던 제 삶을 돌아봅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말, 정말 맞아요.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생긴 사람들, 그들의 언어, 관습, 문화와 환경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시작은 abc로 심히 미약했는데, 나중의 파급효과는 엄청났거든요. 대체 뭐가 그리 대단했냐고요?


그전까지 이 길이 아니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어요. 그 길에서 벗어나면 실패한 줄 알았고, 주위에서도 늘 위기이니 이러다간 자칫 끝날 수 있다며 (어렵다, 안 된다, 힘들다, 3종 셋트만 듣고 산 것 같은 느낌) 반 협박조의 분위기 속에 오그라들게 살았어요. 인생이,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죠.


그런데, 어라, 그게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했거든요. 내 존엄성에 상처받지 않고도 인간으로서 오롯이 살아갈 방법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양하게 저마다의 해법으로 살아간다는 것을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처럼 깨지면서 깨달았어요.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깨뜨리고 나와 성장시키고, 다시 깨뜨리고 나와 성숙의 길로 들어가는 선순환의 구조가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언어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글을 통한 기록으로 이루어지길 원해요. 더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의 모티브는 상대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이것이야 말로 언어의 신비 아니겠어요. 세상은 내 주도의 능동태만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세상은 당신의 입장에서는 보는 수동태도 있어요, 아니, 있어야 해요.


내가 무언가 말하는 건 내 말을 들어줄 대상이 있기에 가능하잖아요. 독백으로만 끝나는 건 심심해요. 대화로 오고 가야 재미있지요. 그래야 비로소 세상은 의미가 있으니까요. 잘랄루딘 루미의 <봄의 정원으로 오라>처럼, 내가 없이 이 우주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반문하며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재점검하듯, 동일하게 당신 없는 이 세상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영어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번역되어 있지만, 한번 들어보세요.)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Come to the garden in spring

There’s wine and sweethearts in the pomegranate blossoms.

If you do not come, these do not matter.

If you do come, these do not matter.


하여 저에게 언어는요, 연어예요. 신비 그 자체예요. 당신에게서 나와 저에게 머물다 다시 당신에게로 향하니까요.



image by pdpics of pixabay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 언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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