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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Nov 25. 2022

자가진단키트 양성, 신속항원검사 음성?

어찌하란 말이오

11월 24일 목요일

수업을 하다 기침이 자주 나왔다. 에이, 설마. 일단 물을 많이 마셨다. 퇴근하고 자가진단키트를 꺼내 검사했다. 한 줄. 음성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11월 25일 금요일

그날 하루 컨디션은 보통 눈을 뜨자마자 알 수 있다. 몸이 묵직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목이 답답했다. "아아!" 목을 긁어 소리를 내 보았다. 아, 애매한데? 자가진단키트를 다시 꺼냈다. 어제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키트를 개봉했다. 최근 학교에 코로나 확진된 선생님이 연달아 몇 분 나왔다. 나까지 코로나에 걸리면 학교에 살아남은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질 게 뻔했다. 아픈 것보다 민폐를 끼치게 될까 걱정이었다.


최대한 콧구멍 깊숙이 면봉을 집어넣고 빙글빙글 돌렸다. 설명서에는 10회가량 문지르라고 나와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20회 정도 문질렀다. 면봉을 용액 통에 넣고 또 20회 저어줬다. 검체 추출액을 테스트기에 3~4방울 떨어뜨리고 기다렸다. 제발,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테스트 결과를 기다렸다. 일단 대조선에 한 줄이 선명하게 떴다. 시험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테스트기를 응시했다. 작은 테스트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매직아이를 할 때처럼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희미하게 보였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망했다. 시험선에 희미하게 한 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체 추출액을 떨어뜨린 지 3분쯤 지났을 때였다. 테스트기를 손에 들고 각도를 달리해서 보기도 했다. 어디서 보나 두 줄이었다. 이렇게 나는 코로나 재감염자가 됐다.


학교에 연락을 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죄송할 일이 아니라는 따뜻한 말이 돌아왔다. 가족들에게도 알렸다. 남편은 평소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일단 창문을 다 열고 본인과 아이들도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했다. 음성인 걸 확인하고 아이들한테 마스크 씌웠다. 학교에 전화해서 아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 연가를 쓰겠다고 말하고 나를 안방에 격리시킬 준비를 했다. 그동안 나는 작은 방에 갇혀서 아이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연락을 했다. 큰 딸은 원망 섞인 목소리로 화를 냈다.

"엄마는 지난번에도 코로나에 걸리더니 왜 또 걸린 거야?"

나도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니라 억울하지도했지만 엄마 때문에 불편을 겪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컸다.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으슬으슬 추워졌다. 지난번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이러다 몸살이 세게 와서 고생을 했던 터라 "드디어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갔다. 접수를 하고 병원 문 밖에서 기다렸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다른 환자들과 접촉을 피하고 싶었다. 원장님께 자가진단키트 두 줄이라 왔다고 했더니 바로 신속항원검사를 해 주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도 병원 문 앞에 있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기침에 인후통, 두통, 오한까지 증상이 확실하고 자가진단키트도 양성이었는데 어떻게 음성이 나올 수가 있지? 원장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키트로 검사를 했고 둘 다 음성이라고 하셨다.


음성이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일단 나는 증상이 있고,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7월에 코로나에 확진됐을 때도 증상이 있던 날 바로 병원에 갔는데 음성이 나왔다가 다음 날 다시 가서 양성이 나왔었다. 이번에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일단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집에서 '안방 격리'는 유지하기로 했다. 문제는 확진 판정을 받는 날이 미뤄질수록 격리 해제일도 미뤄진다는 거다. 출근을 못하는 날도 하루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확진이라면 오늘 확진이어야 했다. 그래서 오후 늦게 한 번 더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음성이었다.


Everything happens FOR me, not TO me.

존스홉킨스 대학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님이 세바시 강연 때 하신 말씀이다.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일어난다."라는 뜻이다. 저 말을 들은 뒤로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떠올린다. 이번 일도 분명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다. 나는 이번 일로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 떠올려 보기로 했다.


1. 남편과 대화를 시작했다.

브런치북 <그러니 제발 결혼하지 마세요.>의 저자답게 며칠 전에도 남편과 싸웠다. 싸움이 늘 그렇듯 우리는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말이 안 통할 거면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말 걸지 말자는 무시무시한 협상을 하고 정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자가진단키트 두 줄은 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코로나 이슈로 우리는 다시 말을 트게 됐다.


2. 경각심이 생겼다.

코로나를 3년 정도 겪다 보니 경각심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첫 해에만 해도 "신발 신으면 걸린다."가 내 신조였다. 나는 신발 신는 법을 까먹을 정도로 집에만 있었다. 출근을 할 때도 손이 틀만큼 자주 손을 씻었고, 마스크를 벗는 일은 절대 없었으며, 밥을 먹을 때도 마스크를 살짝만 내려 음식을 입에 넣고 다시 마스크를 쓰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만큼 유난 떨며 손을 씻지도 않고 마스크를 벗어놓고 식사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손 씻기만은 예전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겼다.

안방 격리는 정말 할 게 못 되었다. 신용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감옥에서라면 어떤 깊은 사색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파서 끙끙거리며 누워있으니 평소 바빠서 못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다음 브런치북은 어떤 걸 쓸지, 내년 학급운영은 어떻게 할지 대강의 아웃라인을 짜면서 내가 당장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저녁 9시. 궁금해서 다시 자가진단키트를 꺼냈다. 아직도 음성이다. 역시 처음에 했던 자가진단키트가 불량이었던 걸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 전국에 나처럼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코로나 애매 확진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 내일도 무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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