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불에 건너면 기분이 좋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나
어릴 적 친구들은 나를 까다롭고 예민한 친구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 맞는 건지 의문일 정도다. 그때의 나는 나만의 기준이나 규칙을 많이 만들어놓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책은 깨끗이 보기' 같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나 문제집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중요한 부분에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게 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밑줄을 그었는데 다음번에 다시 보니 별로 안 중요한 부분이었을까 봐, 밑줄이 삐뚤삐뚤 이상하게 그어질까 봐, 자를 대고 그었는데 밑줄이 글자와 평행을 이루지 않을까 봐. 그러니까 여러 가지 기준으로 잘못 그어진 밑줄이 계속 신경 쓰일까 봐 밑줄을 긋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애지중지 아끼던 책을 옆 반 친구가 잠깐 빌려가더니 수업 시간에 밑줄을 잔뜩 그어와서 속상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과자 봉지 반듯하게 뜯기'도 내가 철저하게 지키던 규칙이었다. 봉지 과자는 위아래 부분이 톱니처럼 삐쭉삐쭉하다. 한 손으로 톱니의 한 부분을 잡고 다른 손으로 바로 옆을 잡아 쭈욱 찢으면 쉽게 뜯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찢어진 과자 봉지는 절대로 반듯할 수가 없다. 불규칙적으로 물결치는 그 찢어진 선을 보고 있으면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나와 함께 과자를 먹기 위해 가위를 챙겼다. 가위로 반듯하게 자른 봉지 안의 과자만이 내 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책에 밑줄 긋는 것도, 과자 봉지를 대충 찢는 것도 아무렇지 않지만 아직도 정말 싫어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덜 닫힌 것'이다. 활짝 열린 문은 괜찮은데 1,2cm 정도 덜 닫힌 문은 나를 미치도록 불편하게 만든다. 덜 닫힌 것 중에 가장 불편한 건 서랍이다. 닫으려다 미처 덜 닫은 서랍, 너무 세게 닫아서 다시 살짝 열려 버린 서랍을 보고 있으면 당장 달려가서 꼭 맞게 닫아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덜 닫힌 서랍 중에서도 최고는 서랍 안의 물건이 살짝 삐져나와있는 서랍이다. 그런 서랍은 잘 닫아놓은 뒤에도 자꾸만 내 머릿속에 떠올라 찝찝하게 만든다.
내가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중에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로 건너기', '초록 불에 건너기' 같은 것들. 너무 당연해 보이는 거지만 횡단보도를 찾기 어려운 좁은 도로에서나, 차가 거의 안 다니는 새벽 시간에는 안 지키는 사람도 많다. 나는 횡단보도가 안 보여도 어떻게든 찾으려고 노력하고, 사람도 차도 없는 곳에서도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겠지만 지키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다. 어쩐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수록 기분은 더 좋다. 오직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운전할 때 '내 앞에 다른 차가 끼어들 공간 남겨두기'도 좋아하는 일이다. ('여유가 있는 날'이라는 조건을 단 건, 여유가 없는 날에는 안 지키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차선으로 들어오고 싶은 차는 언제든 내 앞으로 끼어들 수 있게 앞 차와 간격을 넉넉히 두고 가는 편이다. 그러다 누군가 내 앞으로 들어오면 괜히 뿌듯하다. 그리고 다시 그 차와의 간격을 조금 벌린다. 또 다른 차를 기다리며.
그러고 보니 나는 무언가를 지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지키지 않으면 불편한 것들을 많이 지키려고 했다면, 지금은 지키고 나면 기분 좋은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횡단보도로 건너기'나 '끼어들 공간 남겨두기' 말고도 지키는 게 몇 개 더 있다.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불 정리하기'는 이제 거의 습관이 되었고, 지금은 '매일 글쓰기 루틴 만들기'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될수록 내 자신이 좋아진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되기 위해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규칙을 많이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