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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일

쓰길 잘했다.

by 김채원

나는 기록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기록되는 걸 싫어한다. 나는 기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기록을 자주 지웠다. 내가 기록을 지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을 잊고 싶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나는 게 싫어서 등등.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일기를 썼다. 한 번 쓴 일기는 며칠 뒤에 다시 읽어보고 공책에서 부욱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슬픔이 담긴 일기는 다시 봐도 슬퍼서, 기쁨을 적은 일기는 며칠사이 덜 행복해진 나를 발견한 게 짜증 나서, 이도저도 아닌 일기는 이도저도 아니라서,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일기를 버렸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처럼 마음에 큰 변화를 겪으면 사진도 다 정리했다. 며칠 전, 20대의 내 사진을 찾아보려다 남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걸 발견하고는 살짝 슬펐다. 과거의 내가 어디론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는 왜 자꾸 나를 지우는 걸까 생각해 봤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나를 지웠다.


내가 돌봐주지 못한 나는 점점 병들어갔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 용기 내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데면데면하던 나와 내 안의 내가 글을 쓰며 조금씩 친해졌다. 사실 아직도 내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있다. 불편한 사람의 뒷모습만 발견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것처럼 내 안의 약한 모습이 떠오르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곤 한다. 하지만 믿는다. 꾸준히 쓰다 보면 더 많은 내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생길 거라고.


글쓰기 루틴 만들기 프로젝트(글루틴)를 2기째 운영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작가님들이 글쓰기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글쓰기를 삶에 들여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자주, "쓰길 잘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또 자주, "쓰길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팀라이트 #글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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