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바쁘죠?
베네치아 게임 같은 일상
요즘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숨 쉬기가 어렵다. 내가 뭐 엄청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또 엄청 바쁜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은 바쁘고 몸은 피곤한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연락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외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푹 쉬고 싶어졌다. 퇴근하자마자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중력이 내 몸뚱이를 침대로 깊숙이 끌어당기는 게 느껴질 때쯤, 나는 잠이 들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오늘 안에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잠에서 깼다. 여전히 무거운 몸으로 스마트폰을 켜 시계를 봤다. 일어나야 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생각했다.
아, 왜 이렇게 피곤할까.
아, 왜 이렇게 바쁠까.
요즘엔 만나자는 연락이 두렵다. 10월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한테는 다시 연락하기도 미안하다. "이번 주까지 바쁜 일 마무리 하면 다음 주에는 만날 수 있을 거야."를 몇 주째 반복하다가 해가 바뀌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니가 뭔데 자꾸 튕기냐"고 생각할까 봐 민망하다.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시간에 쫓기는 이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마도 원인은 이 중에 있지 않을까?
1. 이 정도의 일정도 소화할 능력이 안 된다.
2. 시간 관리를 더럽게 못한다.
능력은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면서 능력도 점점 크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시간 관리다. 시간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서 재배치하고 싶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 사이에 있는 쉬는 시간 10분을 모두 잘라 길게 이어 붙이면 글 한 편 쓸 시간이 나올 텐데 그럴 수 없어 아쉽다.
요즘 내 일상은 옛날 한메타자교사의 베네치아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단어를 타자로 쳐서 없애면 되는 게임인데, 단어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없애야 한다. 처음에는 단어의 개수도 많지 않고, 떨어지는 속도도 느리지만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단어가 더 빠르게 내려와서 정신이 없어진다.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렇다. 왼쪽에서 떨어지는 단어를 쳐서 겨우 없애놓으면 오른쪽에 있는 단어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화들짝 놀라 아슬아슬하게 해결하고 나면 왼쪽에 있는 단어도 쑤욱 내려와 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오타도 자주 난다.
오타만 줄어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내 일상의 오타를 찾아봐야겠다. 사실 조급한 마음일 때 오타가 잘 난다. 마음을 좀 더 여유롭게 가져야겠다. 오늘 밤에는 여유를 가지기 위해 술을 한 잔 해야겠다. 어쩌면 내 일상의 오타를 벌써 찾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