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쏙 드는 글
그건 어떻게 쓰는 건데
남편은 자주, 글을 쓰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과 노력만 쏟아붓는다고, 그러는 사이 쌓이는 집안일은 모두 남편 몫이라며 불만이 많다. 미안하긴 하지만 글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조금만 참아 봐. 나 진짜 잘 될 것 같아. 내가 글 써서 대박 나면 오빠는 편하게 살 수 있어. 조만간 그런 날이 올 거야."
사실, 글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무겁다. 글쓰기에 몰두할수록 본업에,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글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애쓴다.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남편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가끔 견딜 수 없도록 진지해지는데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남편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보가 글을 쓰면서 행복해 보여서 나도 기분이 좋아. 그런데 가정에도 조금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어. 매일 도대체 그 글은 언제 대박이 나는 거냐고 얘기하지만, 그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야. 새해에는 남들이 좋아하는 글 말고 여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쓰길 바랄게."
무뚝뚝하고 무심하기로 유명한 우리 남편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까 가슴이 찡했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관심을 바라지 않는 척하면서도 또 내가 쳐다봐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남편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건 어떻게 쓰는 걸까? 나는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좋아한다. 어렵고 지루한 글보다는 가벼워도 재미있는 글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이 좋다.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보름달, 해가 뜰 무렵의 하늘, 아솜이의 그림, 이솜이의 노래, 괜찮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초록색 유리병에 담긴 투명하고 시원한 액체, 팀라이트, 나를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들, 겨울에 피는 철쭉, 고요한 밤공기, 뜨거운 여름 태양, 수평선까지 넓게 펼쳐진 바다, 벚나무, 혼자 있는 시간,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글로 쓰면서 이미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보름달, 해가 뜰 무렵의 하늘...'에서부터 미소를 짓게 될 게 분명하다. 이제 이 글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이다. 조금 슬퍼지거나 무기력해지는 날에 이 글을 찾아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 힘이 난다. 이대로 글을 마치려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 '남편'을 넣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남편'을 추가할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글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 눈감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