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득하고 싶지 않았던 스킬 획득
일요일 오후, 남편이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4박 5일 동안 독박육아를 해야하는데 이상하게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컸다.
남편의 빈자리는 밥을 준비할 때 가장 크게 느껴졌다. 애들은 둘이 잘 놀다가도 꼭 가스레인지를 켜면 싸웠다. 동생이 언니 장난감을 빼앗아 도망가는 소리와,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계란말이를 하는 건 생각보다 예민해지는 일이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두 아이를 말려줬을 텐데 나 혼자는 힘들었다. 잠시 가스불을 끄고 애들을 말리고 올까 했지만 그 사이 잔열에 계란이 다 익어버리고 말 게 분명했다. 앞으로 몇 번의 밥을 더 해야 하는지 떠올려봤다.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평소보다 모든 걸 30분씩 당겨서 했다. 밥도 30분 일찍 먹이고, 30분 일찍 씻겼다. 30분 일찍 재우고 내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한 번씩 다녀오라고 했는데 첫째가 나를 불렀다. 변기 안에 화장지가 있다고 했다. 물을 한 번 내려보라고 했는데 또 나를 불렀다. 화장지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변기가 막혔다. 비상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남편한테 카톡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고. 남편은 피곤하긴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라도 잘 지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집 변기가 막혔음을 알렸다. 남편은 변기 옆에 있는 뚫어뻥을 써 보라고 했다. 나도 걔가 그 자리에 늘 있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남편은 '잘' 해보라고 했다.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막막해하는 나에게 남편이 45도 각도로 맞춰서 눌러보라고 했다가 이내 60도인 것 같다고 했다. 45도든 60도든 내가 각도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쓸데없는 소린가 싶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2개였다. 막힌 변기는 남편이 올 때까지 방치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내 마음도 막혀버릴 것 같았다. 뚫어뻥의 원리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원리는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뚫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튜브를 켜고 변기 뚫는 방법을 검색했다.
유튜브에는 나에게 변기 뚫는 방법을 알려줄 귀인들이 많았다. 가장 변기를 잘 뚫게 생긴 아저씨 한 분의 얼굴을 눌러 영상을 시청했다. 아저씨는 일부러 화장지를 잔뜩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해 놓은 모양이었다. 영상을 찍기 위한 정성이 갸륵해 믿음이 갔다. 영상 속 아저씨는 변기는 이렇게 뚫는 거라며 자신 있게 뚫어뻥을 세게 눌렀다. 안 뚫렸다. 이 아저씨를 계속 믿어도 되는 건지 미심쩍었지만 결말이 궁금해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다행히 두 번째에 변기가 시원하게 뚫렸다.
이제 내 차례였다. 아이들이 엄마가 뭐 하는지 궁금하다며 화장실로 왔다. 변기를 뚫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변기 잘 뚫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지만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 유튜브 아저씨의 가르침대로 뚫어뻥을 힘껏 눌렀는데 막힌 변기는 뚫리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이게 정말 뚫리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워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두 번만에 변기 뚫는 데 성공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살면서 변기 뚫는 방법 따위를 알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갑자기 막혀버린 변기 때문에 뚫어뻥 사용법을 알게 됐지만 조금도 뿌듯하지 않았다. 새로 익힌 소중한 기술을 다시는 써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이 올 때까지 2박 3일 남았다. 이제 계란말이를 하는 도중에 변기가 막혔다는 소리를 듣지만 않는다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