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다정해도 괜찮은 사이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중

by 김채원

다정한 부부를 보면 부럽다. 부러움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이 가졌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다정한 부부를 볼 때 부러움을 느끼는 건, 내가 남편과 다정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일 거다.


늦은 밤 귤을 오물거리며 넷플릭스를 보는 남편 옆에 잠시 앉았다.

"나도 귤"

남편은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귤 하나를 내밀었다.

"껍질 까서"

남편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귤껍질을 깠다.

"먹기 좋게 하나씩 입에 넣어줘"

남편은 피식 웃더니 귤을 하나씩 입에 넣어줬다. 첫 번째 귤을 삼키면 두 번째 귤을, 두 번째 귤을 삼키면 세 번째 귤을. 귤을 건네는 남편 손에서 귤향이 점점 진하게 났다. 우리도 다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상하게 남편과 나 사이의 희망은 오래지 않아 절망이 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희망은 기대를 갖게 만들고 기대는 실망을 만들며 실망이 절망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은 듣기 싫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싫은 소리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서운했던 일은 그런대로 참아지지만, 남편이 아이를 서운하게 하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겠다. 오늘도 그랬다. 아이에게 너무 그러지 말라는 내 말에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며 성가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 사이의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라고 한다. 평소에도 말이 적은 남편은 문제가 생기면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우리 사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을 글로 쓰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내 마음이 나아지는 거지 우리 관계까지 나아지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정한 부부를 보면 부럽다. 싫은 소리를 회피하려는 남편과, 갈등 상황을 회피하려는 나 사이에는 보통의 부부보다는 조금 더 먼 관계의 거리가 존재할 것이다. 아주 가끔 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다정함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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