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짓는 게 어려운 사람
귀찮아, 괜찮아, 김채원
회원가입을 하려면 닉네임을 입력하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도 고민이 됐다. 브런치에서처럼 '개짱이'라고 쓰면 될 것도 같은데, 이제 개짱이는 닉네임보다는 실명에 가까운 느낌이라 아무 데서나 쓰기가 꺼려졌다. 결국 고민하다 내 이름 초성 세 글자 'ㄱㅊㅇ'만 써 놓았다. 써놓고 보니 '귀찮아', 혹은 '괜찮아'처럼 보였다. 자주 귀찮아하고 또 자주 괜찮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닉네임을 발견한 기분이라 괜히 좋았다.
이름이 김채원이라 자주 귀찮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원이었다면 초성을 보고 '귀여워'를 떠올렸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하다 하다 이제 이름 탓까지 하는 내가 어이없으면서도 또 너무 나 다웠다. 한자로 '둥글 원'을 써서 몸이 점점 둥글둥글해지는 게 아닌가 했던 때도 있었으니 이름 탓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고,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내 닉네임과 필명을 내가 만들 수 있게 됐다.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좋으면서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말이 나온 김에 학창 시절 별명 몇 개를 공개해 보자면, 그때는 왜 그렇게 유치했는지 모르겠다. 이름이나 외모에서 떠오르는 걸 아무거나 별명으로 붙이곤 했으니까. 중학교 때는 까만 피부 때문에 초코파이라고 불렸다. 고등학교 때도 여전히 까맸으므로 섹시걸이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아, 솔직히 말하면 섹시걸이 아니라 쌔시걸이다. 새카맣고 시커멓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친구들이 나를 쌔시걸이라고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어딜 봐서 섹시걸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 참 난감했다.
개짱이라는 필명은 우연히 지어졌다. 너무 놀기만 한 날들을 반성하며 '나는 베짱이인 것 같다.'라고 적은 글에 글밥님이 '개미와 베짱이의 중간쯤 되는 개짱이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 개짱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내가 베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개짱이라고 부르니 조금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팀라이트 작가님들이 개짱이의 '개'를 '아주'의 뜻으로, 개짱이의 '짱'을 '최고'의 뜻으로 써서 "작가님 개! 짱!이예요"라고 해주실 때가 있다. 재미있긴 한데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아직 개짱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다른 닉네임을 지어볼까 고민해 봤는데, 참 어렵다.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개짱이 아니라도 괜찮은 개짱이가 되기로 했다. 자주 귀찮고 또 자주 괜찮은 김채원에게는 ㄱㅊㅇ이라는 닉네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닉네임은 각 잡고 고민할 때 보다 장난스레 툭툭 던질 때 더 잘 지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