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공부 알레르기가 있어요.

뭐, 이미 짐작은 했지만

by 김채원

오늘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한 달 전부터 집에서 졸업가를 연습하며 눈물을 보이던 딸. 곧 졸업한다는 걸 알고부터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학교는 얼마나 무서운 곳이냐며, 유치원을 떠나기 싫다고,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다고 자주 울먹였는데 오늘 정말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졸업식은 아이들의 노래로 시작했다. 7세 반 친구들이 모두 무대에 서서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우리 아이는 제일 앞 줄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집에서보다 훨씬 의젓한 모습으로 노래하는 걸 보니 괜스레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 번째 곡은 "엄마의 나무". 이 노래는 수어까지 하면서 불렀는데 손동작 하나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이렇게 잘 커준 딸이 고맙고 대견했다. 그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딸이 가장 빛나 보였던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빛나는 아이가 우리 딸입니다 ㅋㅋ (아무도 못 찾는 문제)


졸업장과 상장 수여가 시작 됐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 큰소리로 "네"하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내심 걱정이 됐다. 부끄럼 많은 우리 딸이 대답도 못하고 쭈뼛거릴까 봐 잔뜩 긴장이 됐다. 괜한 걱정이었다. 우리 딸은 누구보다 큰 소리로 "네"하고 일어나서 누구보다 씩씩하게 무대로 올라갔다. 애들은 언제나 부모의 걱정보다 훨씬 잘한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내 딸은 걱정되기만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는 맨날 훌쩍이던 아이가 졸업식 때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나만 펑펑 울고 왔다니 머쓱해졌다.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친한 친구들과 서로 1학년 몇 반인지 정보를 주고받은 후에 헤어졌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유치원에서 받은 졸업 선물을 뜯어보고 싶다고 했다. 비닐 포장지를 뜯는 소리가 들리더니 당황스러운 아이의 말이 이어졌다.

"이게 뭐야?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선생님이 분명 좋은 거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선물이 뭐길래 아이가 이렇게 실망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봤더니 1학년 때 꼭 필요한 학용품이 가방 가득 있었다. 색연필, 사인펜, 스케치북, 알림장, 국어 공책, 종합장 등 마침 사려고 했던 것들이 모두 있었다. 남편과 나는 눈치도 없이 선생님이 선물을 엄청 센스 있게 준비하셨다며 떠들어댔다. 아이는 실망이 컸는지 우리에게 엄포를 놓았다.

"엄마! 이거 다 공부할 때 쓰는 거지? 나 이런 거 필요 없어. 나 공부시킬 생각 하지도 마. 나는 공부 안 해. 공부 재미없어!"

세상에나. 아직 공부를 시켜본 적도 없고 억지로 시킬 생각도 없긴 했지만 벌써부터 공부를 안 하겠다고 선포하다니 이 친구 보통이 아니다. 뭐, 꼭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하지 않겠다는 건 너무 이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친구 공부 알레르기라도 있는 건가.


밥을 먹으면서 유치원을 졸업한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유치원을 졸업했으니 더 이상 유치원생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자기는 뭐냐고 물었다. 유치원은 졸업했고, 초등학교는 입학하기 전이니 뭐라고 부르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너는 이제 백수라고 했다. 백수가 뭔지 알 턱이 없는 아이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우와, 나 백수 좋아. 마음에 들어." 평생 백수로 살고 싶은 것 같았다. 이 친구 공부 알레르기가 있는 게 확실했다. 내가 아는 괜찮은 백수 삼촌이 있는데 그 삼촌한테 진지하게 진로 상담을 좀 받아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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