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일관성 없는 편식에 대해
사실은 당연한 결과
아이가 100일쯤 됐을 때 이유식 책을 샀다. 이유식이 한자로 '뗄 이', '젖 유'를 쓰는, 그러니까 젖을 떼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는 것도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뜻도 모르던 이유식을 공부하겠다고 책을 정독했다. 책에는 아이가 커 갈수록 모유나 분유만으로는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따로 이유식을 먹여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평생 식습관은 어릴 때부터 잘 잡아줘야 하니 밥 먹을 때 돌아다니지 않고 바른 자세로 밥을 먹도록, 다양한 음식을 먹게 해서 나중에 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부담감이 어깨를 눌렀다. 이유식으로 어떤 걸 먹이느냐에 따라, 어떻게 먹이냐에 따라 무려 아이의 평생 식습관이 결정된다니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최대한 다양하게 먹이기 위해 한 달마다 짰던 식단표 중 하나이유식 덕분이었는지 아이는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었다. 심지어 마트에서 장 본 것들을 정리하느라 한 눈 판 사이에 느타리버섯의 랩 포장을 찢고 생 느타리버섯을 우걱우걱 씹어먹고 있길래 깜짝 놀라 뺏은 적도 있다. 먹던 걸 뺏겨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고 생 느타리버섯이 그렇게 맛있나 싶어 손톱만큼 떼어서 먹어보고 토할 뻔했다. 나중에 안 건데 버섯은 생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하니 맛이 궁금해도 먹어보지 마시길.
아이는 브로콜리도, 파프리카도, 심지어 연근도! 애들이 싫어할 만한 건 다 쥐어줘 봐도 뭐든 잘 먹었다. 역시 이유식이 중요한 거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초록색 싫어병'에 걸렸다. 대파는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채소가 됐다. 이유식 할 때 대파를 안 먹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브로콜리와 대파를 갈아 우유와 함께 끓여 수프를 만들어 주면 싹싹 비워내던 아이였다. 그랬던 애가 이제는 국에 들어간 파는 다 건져내고, 실수로 입에 들어간 파도 귀신 같이 뱉어낸다.
그뿐인가. 채소가 싫어서 볶음밥도 끊었다. 아이를 키울 때 볶음밥만큼 소중한 메뉴가 없다. 그냥 집에 있는 자투리 채소 아무거나 몇 개 다져서, 햄이나 참치, 계란 같은 거 넣어서 볶아주기만 하면 다른 반찬 필요 없으니 세상 편하다. 그런데 그 소중한 볶음밥을, 채소 때문에 안 먹겠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럼 도대체 뭘 먹을 거냐고 물어보면 피자나 햄버거를 찾는다. 그거 말고 밥반찬을 고르라고 하면 항상 메추리알 장조림을 꼽는다. 우리 집에서는 메추리알이 거의 생필품이다. 메추리알이 떨어지면 밥을 굶는다. 정말 이렇게 먹여도 되는 건가 걱정이 되던 차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은 절대 안 먹고 후춧가루만 조금 들어가도 맵다고 물을 찾는 아이라 걱정이 됐다.
급식을 먹고 온 첫날, 아이는 빨간 김치를 먹었다고 자랑했다. 별로 맵지는 않았지만 맛이 없어서 한 번 먹고 말았다고 했다. 김치를 입에 넣어본 것만으로도 기특했다.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이 뭔지 궁금해서 매일 급식에 대해 물어본다.
"오늘은 뭐가 제일 맛있었어?"
"미역 줄기!"
응? 미역 줄기? 하긴.. 미역은 엄밀히 따지면 채소는 아니니까.
다음 날 또 물었다.
"오늘은 뭐가 제일 맛있었어?"
"시금치나물"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우리 딸은 왜 편식도 일관성이 없을까. 설마 채소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해 준 음식이 싫었던 걸까? 그래서 맨날 대충 해도 평타는 치는 메추리알만 찾은 걸까? 아니면 학교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그나마 미역 줄기가, 그나마 시금치 나물이 맛있었던 걸까?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미역줄기볶음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렸다.
"난 그거 안 먹어."
드디어 알겠다. 우리 딸의 일관성 없는 편식은 일관성 없는 엄마와 편식하는 아빠를 골고루 닮은 결과라는 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