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만 TV를 보겠다는 딸

처음엔 기특했다

by 김채원

아이가 있는 집에서 유튜브만큼 대단하고 유튜브만큼 골칫거리인 게 또 있을까. 집안일은 해야 하는데 아이가 자꾸 칭얼거릴 때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해도 아랑곳 않던 아이가 유튜브 하나만 딱 틀어주면 곶감 준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뚝 그치는 마법 같은 일을 볼 수 있다. 부작용이 있다면 집안일이 끝났는데도 계속 보려고 한다거나 집안일만 하려고 하면 기회는 이때다 싶어 가짜로 칭얼거린다는 것 정도.


아이가 점점 커 갈수록 유튜브를 보는 빈도나 시간도 신경 쓰이지만 아이가 보는 콘텐츠 내용이 더 신경 쓰인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 중에는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보지만 그 말투나 내용이 이른바 '병맛'인 경우가 많아서 내 아이한테는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1학년인 우리 아이에게 스마트폰은 사줬지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건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거실에 있는 TV로만 유튜브를 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도 아이가 보는 영상의 내용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욕설이 나오거나 내용이 이상하다 싶으면 다른 영상으로 돌려준다.


집에서 이렇게 노력해도 유해 콘텐츠로부터 아이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 그중에 누군가는 병맛 콘텐츠 이야기를 할 거고, 아이들은 병맛 콘텐츠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우리 아이가 병맛 콘텐츠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로 봐서는 이미 알만큼 아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도 마음껏 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갑자기 일주일에 두 번만 TV를 보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집에는 TV는 일주일에 두 번만 보는 규칙이 있다고 했단다. 집에서도 규칙을 지키는 친구가 멋있어 보였는지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뭐, 나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TV는 수요일과 토요일에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도 알겠다고 했다.


첫 일주일은 순조로운 듯했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 동안 아이는 TV를 보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수요일이 되니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했던 유튜브 영상 2개를 봤다. 목요일과 금요일도 잘 넘어갔다. 그런데 살다 보면 수요일이나 토요일인데 다른 일정으로 바빠 TV를 못 보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아이는 그런 날을 귀신 같이 기억했다가 자기가 TV 보고 싶은 날 얘기를 꺼냈다.

"저번에 수요일인데 TV 못 봤잖아. 그러니까 그거 오늘 보게 해 줘."

아이의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이런 일이 몇 번 생기니까 이제는 '지난번에 못 봤던 거 보기' 뿐만 아니라 '다음에 볼 거 미리 보기'까지 요구했다.

"엄마, 오늘 화요일인데 내일 TV 안 볼 테니까 오늘 보면 안 돼?"

규칙이 점점 무너져갔다. 월요일은 월래 마시는 날이라 마시고 화요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이라 마시고 수요일은 수도 없이 마시는 날이라 마신다는 어느 애주가처럼 우리 아이가 TV를 봐야 하는 이유도 늘어갔다. 목요일엔 지루해서 TV를 보고 금요일에는 방과후 없는 날이라 TV를 본다. 토요일엔 TV를 보기로 한 날이니 당연히 봐야 한다.


이제 수요일과 토요일에 TV를 보겠다는 딸의 말에 숨은 뜻을 알겠다. 다른 날은 TV를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꼭, TV를 보겠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규칙을 다시 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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