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MBTI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MBTI 결과를 확인했을 때에는 용한 점쟁이라도 만난 것처럼 신기했다. 세상에 이렇게 나를 잘 파악하는 도구가 있다니! 결과지에 나온 설명처럼 나는 개인주의자였고, 이상주의자였다. 내향적이었고 직관적이었으며 감정형이었고 인식형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고 싶으면 긴 말은 생략하고 한 마디만 했다.
"저 인프피예요."
어느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세상은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 같다. 만날 나를 인프피라고 소개하고 다녔더니 나는 이제 인프피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어보려다가도 "나는 I니까 이런 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하는 생각에 멈추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할 때에도 "나 F인데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MBTI에 열광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MBTI 광팬이 된 나 스스로가 만든 INFP라는 감옥에 갇혀버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쯤, 내가 정말 INFP는 맞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는 INFP였지만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소중한 12분을 들여 다시 검사를 해봤다.
INFP였던 나는 INFJ가 되어 있었다.
의심했던 대로 나는 INFP가 아니었다. 어쩐지 INFP라는 옷이 더 이상 맞지 않는 것 같더라니.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만한 것이 있다. MBTI는 상반된 두 성향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거다.
나는 내향형이긴 하지만 외향과 내향이 40:60으로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직관과 현실에서도 , 사고와 감정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계획과 탐색에서는 고작 2%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정도 차이라면 다음번에 검사했을 때는 다시 INFP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I, N, F, P라는 네 글자에만 주목해서 나는 내향형이라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없다고 단정 지었고 나는 탐색형이라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MBTI가 꽤 믿을만한 검사이긴 하지만 검사결과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완전히 다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MBTI를 말할 때마다 "저는 60% I, 57% N, 54% F, 51% J인 INFJ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MBTI에도 대/소문자를 넣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70%가 넘을 때는 대문자로 쓰고, 그 이하일 때는 소문자로 쓰는 거다. 나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게 소문자인 infj인 거다. INFJ와 infj는 느낌이 다르니까.
이런 나의 제안이 마음에 든다면 '좋아요' 버튼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좋아요' 버튼을, 다른 의견이 있다면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길 바란다. 나는 아무래도 여전히 infp 시절의 관종 성향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MB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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