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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Sep 18. 2023

사람은 MBTI로 판단할 수 없지 않을까?

기계라면 몰라도

장소와 세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있게 되면, 빠짐없이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사람의 성향을 16가지로 분류해 놓은 MBTI이다. 이것은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되는데, 구분의 척도는 다음과 같다.


E(외향적) vs I(내향적)?

N(직관적) vs S(근거중심적)?

F(감정적) vs T(논리적)?

J(계획적) vs P(즉흥적)?


알파벳 색깔을 다르게 한 이유는? 그렇다. 살짝 의도된 것! 나의 경우엔 빨간색 알파벳으로 표시된 INFJ 유형에 속한다. 위 내용에 따르면 내향적, 직관적, 감정적, 계획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명 인프제라고 '선의의 옹호자, 예언자형'으로도 불리며 구체적인 성향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게 분석되어 있다. 처음엔 이런 사실이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어쩜, 이건 정말 나다!!"라고 느끼며, 글귀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듯 읽어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MBTI에 임하는 자세가 열광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소위말해 맹신 또는 과몰입 상태라고나 할까? 예전에도 이 비슷한 증상이 있었는데,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 짓는 놀이가 한때 대유행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MBTI라는 대세의 흐름을 거부하고 아직도 혈액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을 만날 때도 종종 있다. (참고로 나는 o형이다)




"너, T 야?"


최근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시종일관 들었던 말이다. 무슨 말만 하면 팔로 알파벳 모양 T를 만들며, 티냐고 묻는다. 심지어 나는 T가 아닌데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뿐만 아니다, "너는 딱 봐도 I 나는 딱 봐도 E"라며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향해 아이, 이, 티, 제이, 피 등등 알파벳 행렬을 늘어놓는다. 가나다라마바사도 아니고 IENSFTJP 알파벳을 늘어놓고 앉았으니, 세종대왕님이 아시면 크게 노하실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MBTI가 뭐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 것일까? 

 

내 주변에 과몰입 상태인 그녀는 조만간 MBTI 점집을 차릴 기세다. "내가 딱 맞춰볼게 잘 들어 봐. oo 있지? 그 사람은 분명 (알파벳 나열) 성향일 거야. 대화를 하다 보면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 안 봐도 딱 T라니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분석하고 판단한 지 오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실제로 맞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틀릴 경우도 있는데, 그것을 도통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데이터를 근거로 그것이 마치 전부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 역시도 유행에 따라 열광하고 있지만, 부분적 성향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몸에 포스트잇을 딱 붙여버리고 규정짓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찜찜할 때도 많았다. 




"I지만 어쩔 땐 E고, J지만 어쩔 땐 P이기도 해"


스스로 돌아봐도 그렇다. 나는 전반적으로 내향적인 성향인 것 같지만, 음주를 살짝 곁들이면 급외향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꼭 음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가끔씩은 내 안에 또 다른 나, 상당히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향이 툭 튀어나올 때도 있다. 또한,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우며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J의 성향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계획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접어두고 즉흥적으로 움직일 때도 있다. 


이렇듯 양쪽의 성향을 왔다 갔다 하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MBTI로도 분석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다 그렇지 않을까? 데이터를 입력해서 딱 떨어지는 명령어로 움직이는 기계라면 모를까, 사람을 그런 식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본다. 




"MBTI,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열광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나를 알고 싶고, 내 주변이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세상 사람들이 어떤 유형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왕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인간관계에서 휘둘리지 않기 위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나와 성향이 비슷하면 아무래도 친해질 확률이 높고, 비슷하지 않으면 멀어질 확률이 높을 것이니, 이 모든 걸 미리 알아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맹신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진지하게 알아가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꽤 고단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경우, 혹은 문제 상황에 직면한 경우에는 MBTI가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가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은 MBTI가 구분 지어놓은 척도를 월등히 뛰어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의 깊은 내면까지 분석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함께 지내온 시간, 추억,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MBTI가 정해주는 사람의 성향을 넘어,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충분히 가치로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 


공장에서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듯 사람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결코 똑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MBTI는 어디까지나 참고만 하자고 말하고 싶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MB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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