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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22. 2023

니가 뭔데 날 판단해?


"네가 뭔데 날 판단해?"라고 강하게 외치고 싶었는데, 해설집을 읽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본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 "그치, 내가 이렇지." "역시, 이래서 마음이 괴로운 거였어." MBTI 검사 결과지를 받아본 나의 반응이 그저 우습기만 하다. 센 척해보려 했지만 바로 수긍하고 납득해 버리다니.


MBTI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MBTI로 이야기 하면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건 편리하다. 그럼에도 그 안에 갇혀 버리는 게 싫어서 굳이 깊게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 MBTI, 에니어그램, 사주, 별자리, 타로, 점 등 뭐가 되었든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느낌으로만 알던 두루뭉술한 나를 이렇게 설명 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적극 권하고 싶다. 문제는 나도 모르게 나를 그 안에 꿰맞추려는 태도다.


인간의 성격 유형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다양한데 왜 유독 MBTI가 더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우연히 찾아본 자료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MBTI는 인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해당 콘텐츠는 에니어그램 콘텐츠였는데, 기본적으로 에니어그램은 인간을 고장 난 존재로 바라보면서 시작하는 것과 비교한 설명이었다.


둘 다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보니 어떤 의미인지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안 그래도 복잡하게 다가오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왕이면 긍정적인 해석을 통해 안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MBTI를 비롯하여 유사한 검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알고 싶은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열망 때문이지 않을까. 결과지에는 언제나 각각의 유형에서 성공한 모델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그들을 통해 마치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기 시작한다. 착각이어도 일단 기분은 좋았으니 그걸로 됐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진로 적성 검사부터 MBTI, 에니어그램, 그리고 최근 NEXT MBTI로 불리는 토니 로빈슨의 6 Human Needs 검사까지, 각종 검사지의 결과를 볼 때면 '아- 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그게 그 이상의 엄청난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 내가 알고 있던 내가 결과지에 드러났을 뿐이니까.


만약 청소년 시기부터 20대를 보내는 동안 나를 사유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굳이 MBTI에 열광할 이유도 없었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문장들 안에 국한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 사람은 우주와 같다고 표현하듯 우리가 탐구하면 할수록 광활한 나의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삶이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누군가의 해석에 나를 가두지 말고 오히려 불안을 마주하며 나를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는 건 어떨까. 분명 내면의 나는 알파벳 조합으로 해석되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MB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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