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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Jan 02. 2024

신년 운세를 대하는 마음

내가 용이 될 상인가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종교나 미신, 운명론처럼 확실히 증명할 수 없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은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어쩌다 우연히 띠별 운세나 별자리 운세 같은 것을 만나면 반드시 호랑이띠와 물병자리를 찾아 꼼꼼히 읽고 넘어가곤 한다. 믿지 않는다고 해서 궁금하지도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운세 좋은 말이 있으면 적어도 5초간은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어서 좋고, 나쁜 말이 가득하더라도 '역시 이런 건 믿을 게 못 된다'며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므로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새해가 되면 신년 운세도 본다. 이 또한 일부러 찾아보는 일은 없지만 자주 가는 사이트에 신년 운세를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를 발견하면 속는 셈 치고 눌러보곤 한다. 하루와 한 해의 시간은 365배나 차이 나기 때문에 신년 운세는 오늘의 운세에 비해 훨씬 길다. 총평, 건강운, 재물운, 애정운 같은 것들을 지나면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 운세가 따로 나오기도 한다. 다 읽기도 귀찮아서 일단 캡처한다. 연말에 한 해를 되돌아보며 신년 운세가 얼마나 헛소리였는지 확인할 용도로 저장해 . 하지만 연말까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진짜로 확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올해는 내가 쓰는 은행 앱에서 신년 운세를 확인했다.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나면 생시를 입력하는 칸이 나오는데 여기서 잠깐 고민을 한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내가 한 시 반에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새벽 한 시 반이었는지 오후 한 시 반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무렴 내가 매너 없이 새벽에 태어났을 것 같지는 않아서 오후 한 시 반이겠거니 하고 믿 있다.


별 기대 없이 사주를 입력하고 운세 확인 버튼을 눌렀는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목마른 용이 큰물을 만나 그 뜻을 이루고자 하니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받고 기뻐할 형국입니다. 길성이 문을 엿보니 대문을 열어 길운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용이 여의주를 물었으니 조화도 신기하며 세상에 나서 비로소 큰 것을 이룰 수 있게 될 기운입니다.


용이 여의주를 물었다니 모르긴 몰라도 박이 날 것 같다. 내가 언젠가 한 번은 대박이 날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올해구나. 기다리던 이의 기별을 들은 것처럼, 응당 들어야 할 말 들은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안심이 됐다.


혹시 이 글의 첫 문장이 과거형이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작년까지의 나는, 그래봤자 고작 엊그제까지의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올해의 나는 신년 운세를 맹신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히 신년 운세의 뢰도나 신빙성 같은 것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근거도 없는 헛소리를 이렇게나 길게 늘어놓았다는 게 더 믿기 어렵기 때문에 정성을 봐서라도 믿기로 했다.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어 비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용인 줄 알았는데 뱀이면 어떻고, 여의주인 줄 알았는데 알사탕이면 또 어떠랴. 설렘과 희망을 안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뭘 해도 잘 될 수밖에 없을 것 같. 올해는 진짜 대박이 날 것 같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2024년엔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다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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