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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01. 2024

이불 밖으로 나오는 마음

새해에는 어떤 알약을 삼킬까


하루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새해에도 이변이 없는 한 나에게 가장 버거시간은 이불 밖으로 나오는 아침이 될 테다. (이 글은 새해가 오기 전에 쓰고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수월하지 않다.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알람을 끄고 몸에 온기가 식을 세라 다시 이불속으로 쏙 다. 머릿속으로는 '일어나야 하는데... 이럴 거면 알람을 왜 맞춘 거지' 생각하면서 밤 사이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SNS에 들어가 피드를 둘러본다. 다행히(?) 별일은 없다. 다음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신간 판매지수를 확인할 차례. 한쪽 눈으로 숫자를 확인하며 일희일비한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베개 옆에 폰을 내동댕이 친다.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삭제되었다. 낭패감에 젖어 무거운 몸을 겨우 겨우 일으킨다. 베토벤 헤어스타일을 한 부스스한 얼굴의 여자가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에잇 또 자버렸네, 내일은 진짜로 일찍 일어나야지.'


반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은 잠자리에 드는 때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촉촉하게 로션을 바른 후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릴 때면 '드디어 끝났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빨리 잠들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잠이 들면 아침이 올 것이고 아침이 오면 이불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안락한 침대 밖을 벗어나기도 한참 전에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하루를 버티는 것도 아니다. 프리랜서라 시간 맞춰 회사에 갈 필요도 없다. 그저 양심에 찔리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내려 편안하게 아침을 맞는, 어떻게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왜인지 나는 늘 아침이 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이 싫고 내키지 않았다. 세월이 너무 속절없이 흐른다며, 벌써 한 달이 갔네, 일 년이 갔네 아쉬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고, 지금도 이런데 오십육십 되면 정말 어쩌나 하며 우는 소리를 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아침 기상을 할 때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불속은 엄마의 자궁을 닮았다. 나는 태초에 있던 자리를 그리워하는 걸까. 체온으로 데워진 이불속은 그 어느 곳보다 아늑하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몽롱한 정신으로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그곳에서.


언젠가 태아의 기분에 대해 남편과 토론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우린 이렇게 답 없는 이야기를 즐긴다). 나는 '엄마 뱃속이 가장 행복할 때'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생의 고통을 겪어야 하니 말이다. 반면, 남편은 반대였다. 엄마 뱃속이 얼마나 답답했겠냐며 '세상에 나오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신이 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어느 날은 둘이 TV를 보는데 2천 년 넘게 산다는 '바오밥 나무'가 나왔다. 어린 묘목을 보고 나는 '저 나무는 다 자라기 전에 지구가 먼저 멸망하겠네'라고 말했는데, 그는 '2천 년은 금방이지, 인류 역사가 얼마나 긴 데'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놀라워하며 물었다. "2천 년 후에도 정말로 지구가 존재할 거라고 믿는 거야?"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매일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깊은 무의식에는 심드렁한 염세주의가 깔려있음을 안다. 그런 내가 엄마 배 속처럼 아늑한 이불 밖으로 나와, 누워있던 하루를 통째로 일으켜 세우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덧없는 인생에 의미를 칠하려고 붓을 잡는 것이다. 그것이 염세주의자에게 얼마나 힘겹고 위대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자고, 하루라는 백지에 점이라도 찍어보는 자신이 기특하게도 느껴졌다.


이제 나는 또 365번 이불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낙관 아닐까. 예상과 달리 백 번을 채 못 채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내가 한 달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다시 비관적인 시선이 고개를 삐쭉 내민다. 그러나 도리어 그점이 하루를 밀도 있게 채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은 한 안에 들어있다. 어떤 약을 먹을지는 내가 고른다. 그렇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니! 24년에도 눈을 질끈 감고 삼켜버렸다, 긍정의 알약을.




묵은 해가 떠내려가고 2024년 새해가 도착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다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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