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탕수육집이 있다. 탕수육만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고기가 도톰하고 부드러워 아이들과 먹기 좋아 자주 시켜 먹는다. 오리지널, 광동, 사천 등 소스 종류만 예닐곱 가지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늘 매운 소스와 안 매운 소스를 반반으로 시켜 각자 원하는 소스에 찍어 먹는다. (그렇다. 나는 탕수육 좀 먹을 줄 안다는 찍먹파다.)
처음 이 집에서 탕수육을 시켰을 때 내 눈길을 확 사로잡은 게 있다. 바로 서비스로 주는 떡꼬치다. 정확히 말하자면 떡을 꼬치에 끼우지 않았으니 떡꼬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떡볶이떡을 기름에 튀겨 빨간 소스를 듬뿍 묻혔으니 나는 그것을 떡꼬치라고 부르겠다.
어릴 적 학교 앞 분식집에는 떡볶이와 어묵, 떡꼬치가 기본으로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분식이라면 다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떡꼬치를 가장 사랑했다. 떡볶이 양념보다 더 빨갛고 진하고 윤기가 흐르는 떡꼬치 소스가 내 눈에는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떡 끝을 이로 살짝 깨물어 입에 넣고 씹으면 쫄깃한 떡과 매콤달콤한 소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루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꼬꼬마 초딩에게도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말이다.
맛으로만 따진다면 지금쯤 한국을 대표하는 K-푸드가 되어 있었어야 할 떡꼬치건만, 무슨 이유에선지 요즘엔 분식집에서 찾기 어려운 메뉴가 되어버렸다. 깊은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법. 그렇게 내 기억에서 떡꼬치도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는데 분식집도 아닌 탕수육집에서 떡꼬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탕수육보다 먼저 떡꼬치를 한입 먹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 아...
이것은 떡꼬치에 대한 모욕이었다. 어찌하여 기름에 튀긴 떡에 빨간 소스를 발랐는데 이런 맛이 난단 말인가. 내가 기대한 맛은 매콤달콤이었는데 매콤과 달콤 사이에 눈치도 없는 새콤이 끼어들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실망스러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떡꼬치를 하나 더 먹어봤다. 두 번이나 먹어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오묘한 맛에 나는 '신기한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잔뜩 실망한 나는 이 사실을 사장님께 알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메인인 탕수육은 흠잡을 데 없이 맛있었는데 서비스로 주신 떡꼬치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다. 떡꼬치와 조우하자마자 30년 전 추억을 떠올릴 만큼 반가웠는데 떡꼬치는 내 입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배신했다. 이게 만약 영화라면 탕수육은 다재다능 히어로 주연이었고, 떡꼬치는 느닷없이 끼어들어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당이었다. 이게 정말 영화였다면 악당이 재미를 더하겠지만 탕수육 집에 빌런은 필요 없는 게 아닌가. 배달 앱에 들어가 리뷰 버튼을 누르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차라리 서비스 떡꼬치를 주지 않는 게 이 가게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진심과, 일면식도 없는 가게 사장님께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리뷰를 남기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다음번에도, 그다음 번에도 그 집에서 탕수육을 시키면 꼭 떡꼬치를 먼저 먹었다. 이제 떡꼬치 시식은 일종의 루틴이 되었다. 그 집 떡꼬치의 '신기한 맛'은 진짜로 신기한 맛이라서 먹을 때는 충격인데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 나는 실망할 걸 알면서도 떡꼬치를 입에 넣고 나를 실망하게 한 그 '신기한 맛'을 확인하곤 했다. 그 맛을 확인하고 나면 늘 두 가지 이유로 충격을 받는데 첫 번째 이유는 다시 먹어도 신기한 그 맛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신기한 맛이 놀랍도록 한결같기 때문이다.
엊그제 오랜만에 그 집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떡꼬치에 먼저 손이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떡꼬치 맛이 달라졌다. 입안에 길게 머무르며 거슬리게 하던 새콤한 맛이 사라졌다. 게다가 늘 조금 딱딱하다 싶었던 떡의 식감도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한 게 제대로였다. 기쁜 마음으로 떡꼬치를 하나 더 먹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그 떡꼬치가 맛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발전한 모습에 감동해서 처음으로 3개나 먹었다. 내가 그 떡꼬치의 발전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믿고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세상에는 미래를 단정짓는 말들이 많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며 떡잎만 보고 나무를 판단하고, 제 버릇 개 못 준다며 한 번 잘못한 사람은 매장부터 시킨다. 물론, 떡잎만 보고도 뻔한 경우도 많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도 높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의 확률일지라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차라리 안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떡꼬치가 먹을 만해진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에게 떡꼬치 시식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다. 이번에도 소스가 조금 나아졌을지, 딱 좋았던 그 식감은 여전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다음 떡꼬치를 떠올리다 혹시 내가 첫인상만으로 섣불리 판단해 버린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란다. 떡꼬치에만 관대하고 사람에겐 야박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성질 급하게 별점 테러를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