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행이 지났거나 관계없이 나의 반려 신발은 어그 부츠다. 12월 개시해 봄꽃이 필 때까지 단벌 신사가 아닌 단화 신사(?)를 고집한다. 못생겨서(어글리) 붙은 그 이름처럼 어그 부츠는 외형이 투박하다. 게다가 내 것은 '영의정 신발'이라 불리는 검은색이니 멋은 대놓고 포기한 셈이다. 모처럼 '오늘은 꾸미고 외출을 해볼까?' 생각했다가도 그러려면 어그 부츠와 어울리는 옷이 아닐 테고, 이내 마음을 접게 된다. 그러니까 겨울철 나의 옷차림은 어그 부츠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어그를 신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웬만한 추위가 두렵지 않다. 부츠 안쪽에는 북슬북슬한 양털이 들어있어 폭신하고 보온이 잘 된다. 혹한에도 롱패딩과 어그부츠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엄마 패션'의 상징이란다. 요즘 친구들은 절대 롱패딩을 안 입는다고 한다. '아니 추위도 안 타나?' 놀라웠다가도 과거를 떠올려보니 나 역시 20대 때는 영하 날씨에 맨다리에 치마 차림으로 코트를 걸치고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났다.
처음 어그를 만난 건 바야흐로 20년 전(와, 이렇게 오래됐다고?), 화제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인기리에 방영할 때였다. 주인공 임수정이 갸녀린 몸집으로 투박한 어그부츠를 신은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무지개색 니트에 헐렁한 치마, 아이보리색 어그부츠 차림새는 지금 보면 조금 오글거리는 느낌도 들지만 당시엔 뭇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만큼 혁신적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지금과 달리 유행에 민감했다. 당장 아이보리색 어그부츠를 사서 미니스커트에 신고 다녔다. 어그 부츠를 처음 본 복학생 남자 선배는 '수산 시장'에서 왔냐고 놀려댔지만 나는 속으로 '유행도 모르는 아재군' 콧방귀를 뀌었다. 심지어 한 여름에도 신고 다녔는데 신기하게도 땀이 차지 않고 통기가 잘 되었다. 하지만 모든 유행이 그러하듯 어그부츠의 인기는 반짝이었다. 얼마 못 가 길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아쉬웠다. 그러고 십년 후쯤 다시 길이가 짧은 숏어그가 유행하는가 싶더니 금방 사그라들었다. 유행이란 돌고 돈다지만 그런 건 이미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어그는 유행 아이템이 아닌 생존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뒤였으니까.
부드러운 장모 양탄자를 밟는 듯 기분 좋은 착화감, 보온성은 물론이고 습도까지 보송하게 관리해 주는 어그는 겨울철에도 편안한 외출을 보장한다. 밖에 나갔는데 발이 시리거나 신발이 불편하면 도무지 볼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집에 가고 싶은 충동만 가득하다.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고, 몸이 편하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 고작 신발 하나에 달려 있다니 감사한 일 아닌가. 어그부츠가 아니라 매직부츠라 불러야 할 판이다.
나이가 들면서 물건을 살 때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걸을 때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을 다해야 한다. 가방은 물건을 담아서 들고 다니는 용도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물건이 잘 들어가게끔 넉넉해야 하고 너무 무겁지 않은 것을 택한다. 옷은 피부를 보호하고 체온 유지를 돕는 물건이다. 그것이 우선 충족됐을 때 심미적인 요소를 따지게 된다.
20년 전 나는, 나의 불편과 추위보다는 남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 됐고 더워도 추워도 참아야 했다. 나이가 든 나는 남의 시선보다 내 마음이 편한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 작은 차림새의 변화지만 '나'라는 사람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각성은 놀라웠다. 20년 후 나는 어떤 신발을 즐겨 신을까. 효도 신발만큼은 피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