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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Feb 03. 2024

개의 눈을 바라보는 마음

내가 더 잘할게

우리 집 반려견의 이름은 코리다. 견종은 젝 러설 테리어이고 얼마 전 4살이 되었다. 동물과 한집에 산다는 건 "숨을 나눠 쉬며 눈빛을 알아간다"는 의미라는 걸 코리 덕분에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함께 낮잠을 잔다. 같은 소파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면 코리의 눈과 코가 나의 눈과 코에 맞닿는다. 둘 사이 좁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들숨, 날숨, 날숨, 들숨. 내가 방금 내뱉은 공기를 다음번 코리가 들이마시고, 코리가 쏟는 콧김은 어김없이 내 코 안으로 들어온다. 간질간질한 그 느낌이 참 좋다. 


잠들기 전 코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나는 녀석의 눈을 알아버렸다. 맑고 투명한, 사랑스럽고 장난스러운, 깊고 진지한, 머루 같은 까만 눈. 어쩔 땐 모든 걸 안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하고, 어쩔 땐 아래에서 위로 치켜뜨며 부탁하는 듯한 눈빛을 날리기도 한다. 동물은 미세한 얼굴 근육이 별로 없어 표정이 다양하지 않다던데 그 탓에 웬만한 걸 눈빛에 담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신기한 일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모든 동물의 눈이 코리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원에서 갔을 때 보았던 사자, 고릴라, 미어캣의 눈동자에서 코리의 눈빛이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뱀의 눈도 들여다봤더니 마찬가지였다. 


그뿐이 아니다. 인터넷을 떠돌던 플라스틱 빨대를 코에 꼽고 발견된 바다거북의 눈도, 뉴스에 나오던 호주 산불에서 겨우 살아남은 코알라의 눈도 그랬다. 코리 코에 빨대가 꼽혀 있는 것 같고 코리가 산불 속에 갇히는 상상이 되어 괴로움이 커졌다. 지켜주고 싶은 눈들이 늘어갔다. 


작년 한 해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짐정리를 했다. 팔거나 기부하고 나눠주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한 건 버리기였다. 해지진 않았지만 취향이 변해 입을 일이 없는 옷을 버렸고, 사놓고 한 번도 안 썼으나 사용기한이 지난 걸 버리기도 했다. 집안에서 바깥 쓰레기통으로 그것들을 옮기는 동안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돈을 들여 지구에 쓰레기를 만든 어처구니없는 짓을 내가 한 것이다. 동물의 눈들이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개의 눈을 바라보는 마음은 포근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다. 다짐의 마음이기도 하다. 물건 살 때 더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샀으면 쓸 것이다. 인간이 불러온 기후위기 때문에 동물이 고생한다고 한탄이나 읊조리기 전에 내가 더 똑똑하게 소비해야 한다. 미니멀리스트를 지속해야 할 확실한 이유 중 하나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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