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육아의 마지막 관문은 재우기다. 원래 퇴근 시간 30분 전엔 시간이 잘 안 가는 것처럼 아이를 재우는 시간도 길게만 느껴진다. 아이가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끝도 없이 말을 하면 예민한 내 성격이 더 예민해진다.
우리 큰 애는 예민하고 걱정 많은 나를 닮았다. 잠자리에 누워서 하는 얘기의 8할이 내일 걱정이다.
"엄마, 내일 월요일이야? 학교 가야 돼? 너무 무서워."
"학교 가는 게 왜 무서워. 처음도 아니잖아."
"가면 공부해야 되잖아."
"재밌는 일도 많잖아."
"아니야. 재밌는 일 없어. 아 몰라 짜증 나. 어떡해. 내일 학교 가기 싫어."
이 친구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다. 아직 사교육이라고는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는, 학교 수업 마치면 바둑이나 큐브 같은 방과후 수업 하나만 듣고 집에 오는, 그러니까 또래 애들 중에 공부량이 적은 편에 속하는 그런 친구다. 물론 여기까진 내 생각이고, 이 친구는 매일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힘들어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를 달래 본다.
"모든 건 생각대로 되는 거야. 내일 학교 가서 안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즐거운 일이 생겨. 그러니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봐."
"그래도 난 너무 무섭단 말이야."
"그래. 무서울 수도 있어. 엄마가 꼭 안아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내일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봐."
가만히 듣고 있던 둘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동물탐정단(넷플릭스 시리즈)에 벌꿀오소리가 나오는데~ 벌꿀오소리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대~"
지원군이 도착한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신이 나서 얼른 대꾸를 했다.
"그래? 벌꿀오소리도 그렇구나.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밥을 잘 먹겠다고 마음먹으면 편식도 안 할 수 있고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싸우지 않을 수도 있어. 잠을 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잠을 잘 수도 있지!"
눈치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은 '그러니까 얼른 잠 좀 자라.'였다. 그런데 육아가 어디 그렇게 쉽던가.
"아하! 그럼 마음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겠네. 엄마, 나 마음 안 먹을래! 언니, 우리 자지 말자! 마음먹지 말자!"
신이 나서 깔깔 대는 아이들을 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세 글자는 당연히 '망. 했. 다.' 일찍 재우기는 이미 틀린 것 같으니 징징대고 울다 자는 것보다 웃고 떠들다 자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살면서 한 번도 '마음먹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해 본 적이 없다. 마음먹는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미리 포기한 적은 많지만. 나는 늘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못마땅한 사람이었는데, 이는 마음을 먹을 생각만 했지 마음먹지 않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겨자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눈물이 날 걸 알면서도 억지로 했던 일들 중에는 마음먹지 않으면 안 할 수 있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 경우에는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원래 다들 그러는 거라고 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러니까 내 마음이 아닌 남의 마음을 먹고 해 버린 일이 참 많다. 그런 일들은 십중팔구 후회하기 마련이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인파에 휩쓸려 같이 뛰기보다 일단 중심을 잡고 서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해 봤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마음을 먹고 해 내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6살짜리 아이의 말에서 새로운 답을 찾았다. 내키지 않으면 마음먹지 않을 것. 내가 정말 원하는 일에만 마음먹을 것.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침실엔 잠자는 아이들의 숨소리만 흐른다. 잠깐 고민하다 나도 자려는 마음을 먹지 않기로 한다. 오늘 밤엔 일찍 자지 않겠다. 대신 맥주 한 잔을 하기로 마음먹어본다. 이러려고 일찍 자라고 한 거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