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나서 효도가 더 불편해졌다.
부모는 희생하지 않고 자식은 효도하지 않을 수 있기를
우리 부모님 세대는 효도를 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를 받을 수 없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효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세대가 되는 거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부모님이 짠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대접은 못 받게 생겼으니 말이다.
지금은 조금 덜한데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효도를 굉장히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효도는 자식 된 도리이자 인간 된 도리였고 부모의 뜻은 거스르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불편함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효도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는 전래동화나 책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했고 자식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또 당연히 효도를 했다. 부모도 자식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효도에 대한 거부감만 생겼다.
부모님의 은혜를 주제로 한 노래들도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 가사 대로라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게 어머니였다. 그런 노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마도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니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효도해야 한다는 거였을 테다. 그런데 나는 성격이 조금 꼬였는지 그게 그렇게 들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뭐? 내가 우리 엄마 손발을 다 닳게 만든다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엄마의 손발을 다 닳게 만드는 게 사실이라면 내 존재 자체가 너무 괴로웠고, 그게 아니라면 조금 억울했다.
부모님과 친밀한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효녀와는 거리가 먼 내가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효도가 더 불편해졌다. 자식의 효도에는 부모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머니의 마음>을 들으면 '그래서 뭐? 나보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딸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높고 높은 하늘보다 더 높은 은혜를 베풀 수도 없을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옛날 들었던 <어머니의 마음>이나 <어머님 은혜> 같은 노래들은 자식보다 부모에게 더 부담스러운 노래였다.
나도 우리 딸들을 위해 엄마가 되기 전 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전래동화나 노래에 나오는 만큼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통해 내가 얻는 것도 많다. 어쩌면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나를 느끼며 뿌듯한 마음도 든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에게 사랑받는 경험도 큰 기쁨이다. 그런데 전래동화에 나오는 어머니들은 뿌듯함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자식을 위해서 묵묵히 희생만 한다. 나도 저 정도 희생은 해야 되는데 너무 막돼먹은 엄마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해진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효도를 예전만큼 강조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져서 효도는 엄두도 못 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진다. 감당할 수 없는 집값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결혼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하는 일이 많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함과 동시에 자식에게 희생을 해야 하는 고달픈 세대다. 그 세대가 효도를 받을 수 없는 첫 번째 세대라지만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자식에게 효도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되면 좋겠다. 부모는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자식에게 희생하고 자식은 부모의 희생을 마음의 짐처럼 안고 효도를 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졌으면 한다. 앞으로의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부담감으로 가득 찬 희생이나 효도가 빠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의 인생을 존중해줄 수 있어 각자의 행복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