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육아서는 참고만 하는 걸로
나는 설명서를 좋아한다. 연고의 용법용량, 장난감의 조립 순서, 주방가전의 사용설명 등 모든 걸 설명서대로 해야 마음이 놓인다. 아이를 처음 낳아 키울 때도 설명서가 필요했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서점에는 다양한 육아서가 있었다. 나는 육아를 책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몇 권의 육아서를 읽고 나니 모범 답안을 미리 받아 든 수험생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육아서가 설명서인 양 따라 했다. 책에 나온 대로라면 수유 텀은 3~4시간. 어쩌다 아기가 2시간 50분 만에 배고파 울면 3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이 찝찝했다. 분유 수유 아기는 4개월에, 모유수유 아기는 6개월에 이유식을 시작한대서 혼합 수유하는 우리 아기는 딱 5개월을 지켜 이유식을 시작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모든 게 책에 나오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아기가 자다가 똥을 쌌을 때 자는 아기를 깨워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 자고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는 책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책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나에게 이런 상황은 고역이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책에는 없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새로운 책을 찾아 읽었다. 머릿속에 마구 집어넣은 육아 지식들은 언제 쓰이게 될지도 모른 채 처박혀있었다.
나는 내가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자꾸만 책에 나오는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내 노력은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조금씩 힘이 빠졌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굽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더욱 새로운 사실이었다.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구울 때는 '180도에 20분'이라는 설명서는 참고만 하고 고구마의 크기에 따라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육아도 마찬가지일 테다. 육아서는 육아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을 담은 책이지 우리 아이 맞춤 설명서가 아니었다. 모든 아이를 육아서에 딱 맞춰서 키울 수는 없다. 내 아이의 '크기'는 고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180도에 20분'만 고집했던 무지했던 엄마였던 게 한 없이 미안해진다.
이제는 책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의 눈을 보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있을 수 없기에 나의 부족함에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한다. 모든 아이는 유일한 존재임을 잊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이 아이가 내 옆에 누워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