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 똥으로 나와.
둘째의 응가에서 스티커와 고무줄이 나왔다.
아기들은 응가를 얼굴로 한다. 눈썹까지 시뻘게지도록 얼굴에 힘을 주고 나면 아기 응가 특유의 구수한 향이 퍼진다.
"아쿠~ 응가했어?"
기분 좋게 기저귀를 펼쳤는데 응가 사이에서 공주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첫째가 가지고 놀던 공주 스티커였다. 신기하게도 스티커는 그림이 조금도 지워지지 않고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원래 모습 그대로 나왔다. 그런데 스티커 옆에 아기 머리 묶는 연두색 고무줄도 있었다. 오 마이 갓.
아기는 세상을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탐색한다. 눈에 띄는, 잡을 수 있는 모든 물건은 입으로 가져간다. 입에 쏙 들어갈 수 없는 커다란 물건은 막대사탕 빨듯 쫍쫍 빨기만 하니 걱정이 덜한데 문제는 작은 물건이다. 조용히 입술을 동그랗게 오물거리고 있으면 입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다. 입을 벌려 손가락을 넣어 보면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다 나온다. 인형 구두가 나올 때도 있고, 레고 조각이 나올 때도 있고, 너무 오래 물고 있어서 글자가 다 지워져 버린 종이조각이 나올 때도 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첫째도 잡히는 대로 입 속에 넣어댔지만 내가 계속 첫째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바로 꺼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는 다르다. 내 한 몸으로 첫째와 둘째를 다 보고 있어야 하니 못 보고 지나치는 순간이 있다. 결국 둘째의 입안에서 구조하지 못한 스티커와 고무줄이 둘째의 뱃속을 돌고 돌아 응가로 나온 것이다.
둘째라서 지켜주지 못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첫째는 이유식을 정말 열심히 만들어 먹였다. 한 달 동안 겹치는 메뉴 없이 먹이려고 한 달마다 식단표를 짰다. 왠지 냉동 보관한 이유식은 먹이기 싫어서 명절에는 육수에 다진 고기와 채소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만들어 먹였다. 둘째도 이유식만큼은 언니처럼 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중기 이유식 중간에 포기 선언을 했다. 이유식을 만들 시간이 나질 않았고, 마트에 자주 가기도 힘들어서 대충 집에 있는 재료로만 만들어주다가 나를 위해서도 아기를 위해서도 차라리 사서 먹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동네 이유식 가게는 3팩 이상부터 배달을 해주는데 한 팩이 3끼 분량이라서 몇 개는 소분 해서 냉동 보관을 해야만 한다. 사 먹이는 이유식에 심지어 냉동 보관이라니. 첫째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둘째는 늘 안쓰럽다. 첫째는 온 집안을 휘젓고 이것저것 만져도 마냥 예쁘다 했었다. 그런데 둘째가 만지고 싶은 건 죄다 언니 꺼다. 짧은 팔을 뻗어 겨우 만져보나 싶으면 언니가 재빨리 "내 꺼야"하고 낚아챈다. 둘째 좀 안고 있으면 첫째가 옆에 드러누워 자기도 안아주라고 발버둥을 친다. 결국 엄마의 한쪽 팔을 언니에게 내어줘야 한다. 둘째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가 없다.
첫째라고 마음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3년을 엄마 아빠가 자기만 바라봐줬는데 경쟁자가 생겼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질투가 날까. 갑자기 엄마 뱃속에서 튀어나와서는 내 물건이었던 것들을 마음대로 만지고 다니는 동생이 얼마나 얄미울까. 내 꺼라고 몇 번을 말해도 눈만 끔뻑끔뻑하는 동생이 얼마나 답답할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내 두 손가락을 번갈아서 꼭 깨물어가며 어떤 손가락이 더 아픈지 알아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안 깨물면 안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까지.
사실 첫째라서 좋은 점도 있고 둘째라서 좋은 점도 있다. 첫째는 3년 동안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새 옷, 새 장난감, 새 책을 많이 누렸다. 첫걸음마 같은 첫째의 모든 첫 순간은 엄마 아빠의 첫 순간이기도 했기에 늘 관심을 받고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는 물론 언니까지 있었고, 앞으로 셋째가 태어날 일은 없으므로 갑작스런 동생의 등장에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지 않아도 된다. 엄마 아빠는 이미 첫째를 경험했기에 둘째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 알고 사랑을 듬뿍 준다. 물론 더 능숙해지기도 했다.
엄마로 살다 보면 죄책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정말 나쁜 엄마, 부족한 엄마라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엄마가 가진 사랑의 마음은 우주보다 더 큰데 엄마도 사람인지라 완벽할 수가 없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가끔은 짜증도 낸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데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응가에서 스티커를 발견한 나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애꿎은 손가락을 꼭꼭 씹지 말고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을 해보자.
스티커 좀 삼켜도 괜찮아. 다 똥으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