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남자 친구 없어?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해줄게. 서른다섯인데 사람이 참 좋아. 성실하고 술 담배 안 하고.."
그 뒤로도 그 남자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이 한참이나 이어졌지만 내 귀에는 계속 한 마디만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서른다섯인데.. 서른다섯인데.. 서른다섯인데..'
그때 나는 스물아홉이었고 서른다섯씩이나 잡수신 어르신을 만날 마음은 없었다. 솔직히 기분도 조금 상했다.
'서른다섯을 나한테 소개해준다고? 내가 그렇게 별로야?'
그러니까 서른이 코 앞이면서도 평생 이십 대 일 줄 알았던 스물아홉의 내가 생각했던 서른다섯은 정말 끔찍한 나이였다.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여자 친구 하나 없는 그 남자는 안 봐도 뻔한 남자였고.
그때는 몰랐다. 나도 금방 서른다섯이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때 그 서른다섯 어르신이 마흔하나가 돼서 나랑 같이 살고 있을 거라는 걸.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그 안쓰러운 서른다섯이라는 거다. 나는 도대체 한 게 뭐 있다고 서른다섯씩이나 된 걸까. 더 끔찍한 건 서른다섯 살 남자가 성실하게 출근하고 퇴근하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훌쩍 마흔 하나가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는 거다. 이제는 알겠다. 남편의 모습이 가까운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걸. 나는 벌써 서른다섯이나 되어버린 내 나이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마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흔은 그렇게 맞이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서른이 될 때의 그 착잡함이 떠오른다. 마치 인생이 끝나는 사람처럼 '내가 서른이라니'를 염불처럼 외다 보니 서른다섯이 되어있다.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서른은 세상의 끝이 아니었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으므로 마흔도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5년이나 남은 마흔이 벌써 두려워지는 것은 서른이 될 때의 기분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서른이 될 때는 '삼십 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면 지금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채로 맞이하는 사십 대'가 두려운 거다.
이룬 게 아무 것도 없는 건 아니다. 육아휴직 중이긴 하지만 직업도 있고, 결혼도 했으며, 두 딸도 있다. 그런데 죽음 직전을 상상해보면 이런 것들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은 따로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이름으로 된 책도 하나 내고 싶고. 매일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영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고 나무와 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싶다. 이렇게 야무진 꿈이 있음에도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건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일흔 즈음에 유튜버가 된 박막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서른다섯이면 박막례 할머니 나이의 절반밖에 안되지만 나도 외치고 싶다. 이대로 마흔이 될 순 없다고. 이제는 노트 한 귀퉁이에 끄적여놓은 버킷리스트들을 실행하기 위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날 때다. 더 이상은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며 꿈만 꾸고 있을 수는 없다.